내 소중한 친구, 내 고마운 친구

by 박은석


국민학교 입학식 날 학교에 함께 간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끼리 동갑내기였는데 우리도 동갑이었다.

나는 남자 그 애는 여자.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친구였다.

소꿉친구.


학교에서 돌아오면 또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딱지치기, 제기차기, 술래잡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어울려 놀았다.

여름 낮이면 매미를 잡으러 다녔고 저녁이면 반딧불이를 잡았다.

불알친구.


코 아래가 거무스름해질 때는 늦은 밤까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받아적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녹음버튼을 누르고,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함께 들으며 따라 부르던 친구들이 있었다.

사춘기 친구.


어른이 되면 지금과 같은 친구를 만나기 힘들 거라고 엄포를 놓으셨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다양하게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인생 친구들.




어떤 친구들은 나보다 앞서가면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을 보면서 친구가 먼저 간 길이라면 나도 갈 수 있다며 힘을 냈다.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그냥 두고 가기가 내키지 않아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친구가 도저히 발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면 그를 부축하기도 하고 업기도 하면서 같이 갔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물으면 너와 나는 친구이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정상에 올랐다.

친구는 뛰다시피 정상에 올라간 친구는 천천히 나를 기다렸다.

오르는 길에 너무 무리했는지 내려오는 길에 친구의 발이 풀렸다.

친구가 쉬는 곳에서 나도 앉아 쉬었다.

우리가 꼴찌에 남은 듯했다.

친구에게 등에 업히라고 했다.

한사코 싫다던 친구를 억지로 업었다.

우린 친구니까.




늦깎이 나이로 머리를 밀고 군입대를 했다.

훈련소 내무반에서 내 옆에 눕던 친구는 나보다 서너 살 어렸다.

군대에서 만났으니까 전우라고도 했는데 그는 나를 형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에게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대구 지하철 공사 폭발사고 때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그 몇 해 전에 있었던 그 사고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때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참 안 됐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그 희생자 가족이 내 친구의 친구였다.

갑자기 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빠 잃은 슬픔에 통곡하던 이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옆에서 그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주었을 내 친구의 모습도 그려졌다.

그들은 그렇게 슬픔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친구였으니까.

신병훈련의 마지막 관문인 40킬로미터 행군 때 중간에서 탈진한 그 친구의 군장을 대신 짊어질 수 있었던 것도 우린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계속 나는 친구를 만나고 있다.

처음부터 친구로 만난 게 아니라 남으로 만났다가 친구가 되었다.

나이가 비례해서 친구의 숫자도 많아졌다.

어떤 친구는 멀리 갔고 어떤 친구는 가까이 있으며 어떤 친구는 자주 만나고 어떤 친구는 어쩌다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친구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빙그레 생각이 나는 친구가 있다.

언제나 나에게 휴식 같은 친구.

오래 사귀어도 계속 사귀는 친구.

오래 만났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친구.

친구로 만나 스무 해 넘게 함께 살고 있는 내 아내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가 아내와 남편이 되었고,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친구이다.

먼 길을 가장 기분 좋게 가는 방법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듯이 내 친구인 내 아내와 먼 길을 참 잘도 걸어왔다.

그 길에 함께 해 주어서 고맙다 친구야.

내 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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