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게 되었다

by 박은석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의 사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법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법으로 따지더라도 그 말이 맞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분명히 안다.

우리 사회는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

같은 시간 비슷한 강도로 일을 하더라도 여성보다 남성이 승진할 확률이 높다.

대충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남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다.

우리 사회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힘은 병풍 뒤에 가려져 있다.

우리 역사를 빛낸 여성 위인을 꼽으라고 하면 딱히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성들이 위대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위대한 여성들을 우리 사회가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화폐를 보면 그 나라의 정체성이 보이고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위인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화폐를 보면 1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 5천원 권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가장 비싼 화폐인 5만원 권에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이황이나 이이는 사람 이름이 맞는데 신사임당은 솔직한 말로 사람 이름이 아니다.

이름 대신 불렀던 호가 ‘사임(師任)’이고 ‘당(堂)’은 여성임을 표현하는 ‘누구네 집’ 혹은 ‘어느 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신사임당은 사임당(사임댁) 신씨라는 말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걸출한 여성 중의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임당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이름이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중요하다.

이름이 전부일 수도 있다.

이름을 얻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얻는 것이고 이름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다 같이 힘들 때, 다 같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서 힘을 모을 때는 상대적으로 평등의식이 고취된다.

우리 역사 속에서 평등의식이 가장 왕성했을 때는 아마 일제강점기 때일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지만 일본제국주의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서로 동지가 되었다.

안중근 같은 양반가의 아들도, 김구 같은 상민 집안의 아들도, 머슴 출신인 홍범도 같은 이도 독립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해주었다.

그런데 같은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항일운동을 했음에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꼽으라면 ‘유관순’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알려주지 않았고 가르쳐주지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에게서도 남녀는 평등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결혼한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에게 가려 빛을 잃기도 했다.




누가 독립운동가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주었는가?

누가 독립운동가들에게 힘을 내서 싸우라고 밥을 지어 주었는가?

누가 독립운동가들이 갇혔을 때 감옥 밖에서 수발을 들었는가?

여성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한 안중근이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셨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가 있었다.

상해 홍커우공원에서의 폭탄 투척으로 일제 요인 여럿을 죽인 윤봉길이 어린 두 아들을 남겨놓고 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들을 훌륭하게 잘 키울 수 있으리라 믿었던 부인 배용순 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계파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쓰면서까지 서로 화합하자고 외쳤던 ‘세 손가락의 여장군’ 남자현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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