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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1. 2022

누구에게는 별것 아닌 것이 나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내 국민학교 동기 50여 명 중에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가 있다.

평상시 조심해야 할 질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은 건강했다.

단지 마음의 병이 있었다.

병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 남자를 사랑한 것뿐이었다.

스무 살 청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반대가 얼마나 심하셨는지, 친구 커플의 고민이 얼마나 컸었는지는 모르겠다.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했는지 같은 날 같이 갔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게 남자이고 여자인데 왜 이리 미련한 결정을 내렸을까 하며 친구들과 뒷담화를 나눴었다.

그렇게 실컷 떠들고 나면 친구의 얼굴이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는 친구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친구에게는 인생 전부였을 것이다.




산신령에게 금도끼와 은도끼를 얻은 나무꾼 이야기를 보면 실수로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나무꾼이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깟 도끼 하나쯤이야 할 텐데 나무꾼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도끼도 자기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빌린 것이다.

나무꾼에게는 도끼를 구할 돈도 없고 집에 도끼도 없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 것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가 보면 길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중에 한국에서 중고로 넘어온 차들이 있다.

깨끗하게 새로 도색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일부러 도색을 하지 않고 한글 표지판과 광고판을 그대로 달고 다닌다.

그래야 한국에서 온 자동차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구닥다리라며 폐차장으로 보내겠다고 하는 자동차인데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재산목록 1호가 되기도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보면 베르테르라는 청년은 우연히 만난 로테라는 처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저녁 파티에서 다시 로테를 만난 베르테르는 그녀와 춤을 추게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다.

로테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연정은 그치지 않는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마음은 베르테르가 입고 다니는 옷으로도 충분히 표현된다.

그는 로테와 함께 춤을 췄을 때 입었던 파란색 연미복을 애지중지하여 늘 그 옷만 입었다.

심지어는 그 옷이 너무 닳고 낡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되자 그 옷과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깔의 옷을 새로 맞춘다.

남들에게는 별로 좋지도 않은 그저 그런 옷이었겠지만 베르테르에게는 그 옷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이었을 것이다.

더 좋고 비싼 옷을 준다고 하더라도 베르테르는 오직 그 옷만 고집할 것이다.

그게 전부이니까.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보면 심장병을 앓고 있는 마리아가 주인공에게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기처럼 병약한 사람을 사랑했다가 나중에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는데 그게 미안한 거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별것도 아닌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인데 굳이 나에게 인생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버럭 화를 내듯이 대답을 한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에게는 모든 것이 되기도 하고 전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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