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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2. 2022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인 안나 네트렙코가 러시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안나 네트렙코의 공연을 보이콧하고 맹 비난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 뉴스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있었다.

몇 년 전 내가 오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안나 네트렙코가 큰 영향을 끼쳤었다.

처음에는 ‘축배의 노래’로 유명한 <라 트라비아타>에서 그녀의 연기에 뽕 갔고, 그다음에는 <사랑의 묘약>에서 다시 한 번 뿅갔다.

그러고 나서는 그녀가 공연했던 <마농>, <피가로의 결혼>, “미미!”를 외치며 끝맺는 <라 보엠>, <청교도> 등 안나 네트렙코를 따라서 오페라 산책을 했었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라이프스토리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자기계발을 꿈꾸는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모습에서는 생명 존중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한다고 하니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러시아 사람이니까 러시아 사람처럼 생각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국가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극한 상황에 치닫게 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만 옳다고 하고 자기 나라만 옳다고 주장하게 된다.

국가가 존재하기 전에는 영주나 부족장 중심의 공동체 중심의 생각을 했었겠지만 국가가 생긴 후에는 국가 중심의 생각을 하고 있다.

솔직히 안나 네트렙코가 러시아의 전쟁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 건나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에서 전쟁의 참혹상을 알리는 사진이 실리면 “아이고, 이걸 어쩌나.” 안타까운 말을 내뱉지만 곧이어 더 자극적인 기사를 찾고 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서방사회의 대부분은 러시아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러시아 측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잘못했다고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따라서 이렇게도 주장하고 저렇게도 주장할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유명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계속 질문하는 내용이 바로 이런 종류이다.

베트남전에서 잘못한 측은 누가냐고 물어보면 각자 자기 입장을 반영하여 프랑스가 잘못했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베트콩이 잘못했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미국이 잘못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 가다가 한국이 잘못했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가면 갈수록 명확히 가름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맞고 틀리고의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인류 보편의 어떤 기준을 찾아야 한다.




왕의 말 한마디가 기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종교적인 신념이 기준이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훌륭한 사상가의 가르침이 삶의 기준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그 기준대로 살아가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들도 어딘지 불완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준대로 지키기에는 우리 인간이 너무나 부족하고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인류 보편의 기준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다.

그 새로운 기준도 더 이상 기준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내가 완벽지 않은 걸 인정하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며 양보하고 고개를 숙이면 어떨까?

서로가 그렇게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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