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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9. 2022

비와 함께 쓸려가 버린 너무나 소중한 것들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밤에 불어대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물기를 흠뻑 머금은 바람이었다.

연일 뜨거운 공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기에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싶었지만 밤사이에 큰비가 내리면 낭패일 것 같아서 미리 창문을 닫았다.

적당한 양의 비가 내려서 이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직한 채 잠을 이루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 창밖을 내다봤다.

비가 오지 않았다.

일기예보가 또 빗나가는 것 같았다.

오전에도 비는 오지 않았다.

비는 소식만 전하다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원 갔던 아이가 우산을 안 가져갔다며 자기를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딸을 집에 데려다주고 조금 있다가 아들을 데려다주는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아니 점점 더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아주 큰비가 올 조짐이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는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노아의 홍수 때도 이런 비였을까 싶을 정도였다.

10년 전쯤에도 이런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동네를 흐르는 탄천도 범람했었다.

물이 빠져나갔을 때 물고기가 인도에까지 올라와 있던 걸 목격하기도 했다.

그 후에 탄천을 많이 정비했지만 이런 정도의 비라면 또 범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간간이 뉴스를 들으면서 비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다.

언제나 그렇듯이 비 피해는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임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 낮은 지역에는 사방에서 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두 배의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열 배, 백 배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번 비 피해도 다르지 않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터전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기자들은 물바다가 되어버린 지역들을 취재하느라 바빠 보였다.

굳이 기자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들을 보면 물이 얼마나 많이 고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물이 허리까지 찼다느니, 맨홀에서 물이 역류한다느니, 지하철 역사가 홍수라느니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뉴스는 길거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들이 불어난 물에 잠겨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비싼 자동차를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만큼 이번 비가 피해를 많이 끼쳤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손익계산이 빠른 기자들은 침수된 차량을 위해서 보험사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얼마만큼의 손해가 났는지도 알려주었다.

조금 있으면 재난지원금을 얼마를 책정해야 하는지도 보도할 것이다.

철저히 경제적인 논리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뉴스들이다.




며칠 지나 비가 그치면 곧바로 복구작업을 펼칠 것이다.

망가진 도로는 깨끗하게 단장을 할 것이며, 길거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동차들도 치워질 것이다.

흙탕물로 일그러진 건물들은 수돗물로 한 번 씻으면 깨끗해질 것이다.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보험사와의 실랑이가 전개되겠지만 그것도 곧 조정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 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 피해 보상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속하게 복구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게 있다.

기자들은 복구비용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돈을 들이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돈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것들이 있다.

이 비와 함께 쓸려가 버린,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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