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거리를 사 왔는데 하필 홍어매운탕이다!

by 박은석


냉장고를 열어봐도 먹을 게 없다.

아니 먹거리는 있는데 먹고 싶은 게 없다.

딱히 뭘 먹고 싶은 생각도 없이 배는 고파온다.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이고 아들의 여름방학도 끝나는 날이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아들도 별로 구미가 당기는 게 없는지 안 먹겠다며 학원으로 갔다.

2시간 후에 집에 오면 배고프다고 할 텐데 뭘 먹일까 아내와 이야기를 해 봤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아들을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오면서 잠깐 마트에 들렀다.

‘그래 매운탕에 라면 사리 넣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전에도 몇 번 시도했는데 시도할 때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오늘도 수산물 코너에 들렀다.

일단 두툼하게 썰린 광어회 한 포장을 샀고 그 옆에서 매운탕거리를 골랐다.

1인분 포장보다 2인분 포장이 괜찮아 보였다.

이 정도면 우리 네 식구가 한 끼 식사로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가 뭘 사 왔냐고 물었다.

매운탕과 회를 보여주며 일단 회를 먹고 있으라고 했다.

냉장고에서 온갖 야채를 다 꺼내서 썰어놓았다.

냄비에 물을 붓고 매운탕 포장을 풀었는데

‘어? 이 냄새는... 혹시...’

갑자기 내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분명 매운탕이라고만 쓰여 있었어.’

사실이 그랬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은 생선을 감별할 수가 없으니까 포장지에 적힌 이름을 봐야 한다.

포장지에는 그냥 매운탕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홍어라는 표시가 붙었으면 내가 살 리가 없다.

냄새에 민감한 우리 식구들이다.

아이들은 커피 냄새도 싫다고 한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때는 고수 냄새를 견디지 못해 한다.

고수를 듬뿍 넣고 먹는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펄펄 끓이면 냄새가 사라지겠지.’

고추장을 추가로 더 넣고 고춧가루도 뿌리고 간을 보았다.

순간 코끝을 스쳐가는 냄새가 있었다.

‘큰일이다!’




아내에게 먼저 조금 먹어보라고 한 그릇 떴다.

광어회로 입맛을 돋운 아내가 매운탕 한 숟갈을 뜨더니 “이게 무슨 냄새야?” 물었다.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생선이 상한 것 아니냐는 듯이 반응했다.

그제야 내가 대답했다.

“홍어인가 봐. 그냥 매운탕거리인 줄 알았는데 홍어 매운탕인가 봐.”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도저히 냄새 때문에 못 먹겠다 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나도 한 그릇 떠서 먹어보았다.

역시 홍어가 맞다.

얼떨결에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홍어 매운탕을 끓여버린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광주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 피로연 식탁에 홍어탕이 올라왔었는데 그때의 맛 비슷했다.

내가 잘못 끓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성껏 홍어 매운탕을 잘 끓였다.

단지 우리 식구들이 먹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아무도 안 먹으면 저 많은 매운탕을 나 혼자 먹어야 한다.




이제 조금 후에 아들이 온다.

저 매운탕에 라면 하나 넣고 마법의 라면 스프를 넣는다면 홍어 냄새를 줄일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각해 보니까 이런 일이 오늘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내 딴에는 잘해보겠다고 했는데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반응이 더 안 좋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을 때 빨리 멈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니까 정성껏 열심히 하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어야 했다.

생각이 좋다고 해서 결과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매운탕을 끓여준다는 생각은 좋았지만 내가 사 온 게 홍어 매운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소원은 둘 중 하나이다.

라면 스프가 홍어 냄새를 빼앗아가버리든지 아니면 내 아들이 홍어 맛을 기막히게 좋아하든지.

“오!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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