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抱川) 땅은 볼거리도 많아 여러 번 갔었다.
특히 산정호수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산정호수를 처음 가 본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포천이 고향인 친구가 있었는데 포천에 경치 좋은 곳이 있다며 학년 MT장소로 추천을 했었다.
당시 우리 과 동기들은 굉장히 친화력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씩 MT를 가곤 했었다.
한 주간의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였다.
이문동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상봉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은 족히 갔던 것 같다.
산정호수는 말 그대로 산 위에 펼쳐진 호수였다.
섬에서 자란 나로서는 호수라는 것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밤새 친구들과 놀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그 넓은 호수를 따라 산책을 했다.
어느 소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었다.
낡은 사진 속에는 그날의 친구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지금은 반백의 나이에 머리가 희끗해졌을 친구들인데 그때는 우리도 젊었다.
두 번째로 포천을 찾았을 때는 그 포천의 친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다.
오후 늦게 출발했는데 검문소마다 군인아저씨들이 버스에 올라 검문을 하는 통에 늦은 밤에야 겨우 도착했다.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가 생소했던 때라서 어색하게 친구와 함께 하룻밤 같이 지내고 왔을 뿐이었다.
딱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포천과의 인연이 매듭지어지는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포천에 유명한 볼거리들이 늘어나면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다녀오게 된다.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가게 되면 식상할 만도 한데 포천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산이 높아서 산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고, 골이 깊어서 골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다.
포천(抱川)은 그 이름대로 냇물을 감싸 안고 있는 지형이다.
골짜기마다 흘러내리는 냇물들을 하나씩 끌어안아서 한탄강으로 보내주는데 그 물길은 임진강과 합쳐져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포천은 역사적인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겨 포천까지 도망쳐올 때 강을 건너면서 크게 한탄했다고 한다.
그래서 포천으로 들어가는 강을 한탄강(漢灘江)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정호수 근처에 숨어 지내던 궁예가 결국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을 보고 새들도 산속에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그 울음소리가 전해지는지 그 산을 명성산(鳴聲山)이라고 한다.
실컷 통곡하는 ‘울음산’이다.
궁예는 그 산에서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며 실컷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그 산에 억새풀이 만발한다.
그 억새밭 한가운데 숨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억울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마음껏 울고 나면 마음이 확 풀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억새풀이 만발할 때면 그곳에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신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장차 화를 불러올 아이라는 점쟁이의 말 때문에 버려진 왕자.
왕자의 신분을 속이고 사찰에서 숨어 자란 사람.
장성해서는 사람들을 모아 후고구려를 세운 임금.
싸움도 잘했지만 통찰력도 뛰어나서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인물이 궁예였다.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잘 보듬고 어루만져 주었으면 백성들이 많이 따랐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으니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대했으면 사람들이 충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궁예는 그 좋은 재능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말았다.
워낙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신하들은 그에게 조언도 충고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 궁예를 떠나가는 게 살 길이었다.
한탄강을 지날 때 궁예가 뭐라고 한탄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천은 그의 한탄을 다 품어 주었다.
포천은 냇물만 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품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