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을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by 박은석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가을이 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덥다고 했는데, 사무실 에어컨 온도 조절을 하고 선풍기도 돌렸는데 갑자기 가을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부랴부랴 긴팔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아니다.

옷섶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다.

재킷을 걸쳐야 한다.

아직은 여름 바지에 여름 재킷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견딜 만은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낭패를 볼 것 같다.

빨리 옷장에서 가을옷을 꺼내야겠다.

더위는 느긋하게 맞이하더라도 추위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더위는 게으름뱅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지만 추위는 도둑놈처럼 눈 깜짝할 새에 찾아온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새벽 공기가 차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잘 때가 아니다.

얇은 홑이불보다 폭신폭신한 두꺼운 이불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때다.

나에게 가을이 왔다.

다양한 얼굴로 가을이 다가왔다.




나에게 가을은 파란 하늘 아래서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처럼 다가왔다.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피었다.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다.

우연히 눈을 들어 보니 내가 가는 길가에 죽 늘어서서 한들한들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언젠가 마라톤 선수를 응원하는 시민들도 저 코스모스처럼 길가에 죽 늘어서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꼭 그 모습을 닮았다.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그곳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지금 당장 달려온 가을이 아니다.

전부터 이미 와 있던 가을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타이밍에 나에게 다가온 가을이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늦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게, 딱 맞는 시간에 가을이 내게로 왔다.

여덟 장의 꽃잎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어서 코스모스다.

봄여름의 간격을 지나 정확한 타이밍에 코스모스처럼 가을이 나에게 왔다.




나에게 가을은 누런 벌판의 왁자지껄한 타작마당처럼 다가왔다.

탈탈탈탈 돌아가는 탈곡기 소리에 동네 강아지도 신이 나서 맘껏 뛰어다닌다.

어른들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와서 탁주 한 사발 들이키고 가라고 선심을 쓴다.

아이들은 볏단을 헤집고 들어가서 자기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았다.

떨어진 이삭을 불에 구워 먹고 숯검댕이가 된 얼굴을 보며 깔깔대며 놀려댄다.

이번 소출이 몇 섬이나 나올지 몇 말이나 될지는 몰라도 서로 수고했다며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고생이 많았다며 이제 좀 쉬자고도 한다.

어쨌거나 한 해 농사를 마친 것이다.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는데 잘 마쳤다.

결과는 하늘에게 맡기고 우리는 서로 등 두드려주면 된다.

거둬들일 것은 거둬들이고 태울 것은 태워버리면 된다.

거둬들인 것은 식량이 되고 태워버린 것은 거름이 된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타작마당처럼 가을이 나에게 왔다.




가을은 천 개가 넘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높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붉은 홍시처럼 가을이 다가온다.

바람이 불면 아슬아슬하다.

저러다가 툭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오래 달려 있어서 운치는 좋다.

그것으로 만족하면 그것대로 괜찮은 가을이다.

빨리 따서 맛있게 먹으면 또 그것대로 괜찮다.

가을이 모든 것을 커버해준다.

어떤 이에게는 가을이 빠알간 단풍잎처럼 다가온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뺏어가 버리는 불타는 정열처럼 가을이 온다.

또 어떤 이에게는 가을이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다가온다.

제 역할을 다했다며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고 한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면서도 끝끝내 뿌리를 덮고 거름이 되어준다.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낙엽처럼 가을이 온다.

가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당신에게 가을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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