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념이 허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by 박은석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에펠탑이다.

유치원생들도 에펠탑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프랑스가 어디에 있는지 또 파리는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에펠탑이 프랑스의 파리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만큼 에펠탑은 파리의 명물이고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1889년에 세워졌다고 하니까 에펠탑의 나이는 130세를 훌쩍 넘겼다.

에펠탑을 디자인한 귀스타프 에펠조차도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에펠탑은 프랑스 시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파리 세계박람회의 기념물로 세워졌다.

멀리서도 박람회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세운 것이다.

박람회 장소의 랜드마크가 에펠탑이었다.

당연히 박람회가 끝나면 에펠탑도 철거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파리 박람회는 진작에 끝났지만 에펠탑은 아직까지도 건재하다.




나로서는 애초에 에펠탑을 철거하기로 하였다는 그 계획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 엄청난 쇳덩어리들을 어떻게 철거할 생각이었는지 감이 안 잡힌다.

에펠탑을 세우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겠지만 철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파리 시민들이 에펠탑을 철거하자고 한 이유는 매우 단순한 이유였다.

절대왕정시대를 지나면서 파리는 전 유럽에서 가장 문화적인 도시, 예술적인 도시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시민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기를 지나면서 프랑스 사회에는 큰 동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격랑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프랑스 사람들의 예술성은 더욱 깊고도 넓어졌다.

그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파리라는 도시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쇳덩어리가 들어서는 바람에 파리의 분위기가 망가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여러 예술가들은 에펠탑을 ‘추악한 고철 덩어리’라고 악평하였다.




에펠탑을 싫어한 대표적인 인물은 <여자의 일생>이라는 명작을 남긴 세계적인 작가 기 드 모파상이었다.

그의 단편소설 <목걸이>는 학창시절에 시험문제로도 종종 출제되곤 했었다.

허영심 많은 부인이 친구에게 목걸이를 빌려서 파티에 갔다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큰일이라 생각한 부인은 자신의 재산을 털고 돈을 빌려서 똑같은 목걸이를 친구에게 사주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목걸이 갚을 갚으면서 고생고생했는데 나중에 친구가 그 빌려줬던 목걸이는 가짜였었다고 알려주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허영심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모파상 자신도 엄청난 허영심을 가지고 살아갔던 것 같다.

그 허영심이 에펠탑을 반대한다는 목소리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최고의 문학가인 자신의 예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까 에펠탑은 형편없는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물은 빨리 치우라고 했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너무너무 싫었다.

하지만 파리 시내 어디에서든지 눈을 돌리면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을 가릴만한 건물이 없었다.

집의 창문도 에펠탑이 안 보이는 쪽으로 낼 정도였던 모파상으로서는 보기 싫은 건물이 계속 보이니까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

그러던 중에 에펠탑이 안 보이는 딱 한 군데의 장소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모파상은 날마다 그곳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에펠탑 안에 자리 잡은 카페였다.

에펠탑을 싫어하는 사람이 왜 에펠탑에 왔냐고 물으면 그는 당당하게 “이곳이야말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니까 이곳에 왔다.”고 대답했다.

130년이 넘도록 사람들 사이에서 모파상과 에펠탑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은 모파상의 예술적인 신념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만 모파상의 허영에 대한 일침이기도 할 것이다.

혹시 나도 모파상처럼 내 신념이 허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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