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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9. 2022

열심히 사는데 가난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우리 동네 먹자골목을 거닐다 보면 사람들이 참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다 가는 사람들 말고 그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어떤 식당은 아침 7시에 벌써 일을 시작한다.

국물 육수를 만든다고 전날 밤부터 준비를 했을 거다.

어떤 식당은 자정이 넘도록 불이 켜져 있다.

전에는 24시간 불 밝히고 일을 했었다.

대부분의 식당은 밤 10시가 넘어가면 그날의 정리를 한다.

주택가에 위치한 식당들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식당들이 문을 닫을 때쯤에 운동화를 신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온다.

내가 무슨 방범대장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나가면 왁자지껄한 시끄러움을 피할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다.

하루의 장사를 마무리 짓고 주인장 내외가 앉아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었다.

고된 삶을 달래느라 서로 소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어느 날 식사하면서 물어보니 이렇게 장사를 해서 아들딸 대학공부도 시켰고 시집, 장가도 보냈다고 했다.

가진 것은 맨몸뚱아리밖에 없어서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까 기술도 생겼고 단골도 생겼고 그럭저럭 임대료도 내면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식당이 운영을 그만둔다는 소문이 들렸다.

20년 넘게 그 자리에 있었는데 가게가 없어진다기에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앞으로 어떻게 사실 거냐고 여쭈었더니 그동안 장사하느라 좋아하던 등산도 못했는데 이제 마음껏 산에 다니겠다고 하셨다.

천주교 신자인 안주인은 성당에 자주 못 가서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동안 못 갔던 것까지 몰아서 열심히 다니겠다고 하셨다.

두 분의 얼굴에서 열심히 산만큼 보람이 있었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인사드리고 나왔다.




열심히 살면 소득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꼬박꼬박 저축을 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땅도 산다.

재산이 늘어가는 것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다.

반면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수입이 줄어들고 삶의 질이 안 좋아진다고 한다.

들어오는 것은 적은데 나가는 것은 많은 역류현상이 벌어진다.

가졌던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가서 빈털터리가 된다는 것은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이란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려면 소득이 많아야 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썼다.

프로테스탄트, 즉 기독교에서는 열심히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사람, 즉 신앙 좋은 사람이란 결국 재산 많은 부자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중세 기독교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치열하게 재산을 긁어모으려고 했다.

그 결과 부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부자 한 명 탄생할 때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이 가난하게 되었다.

가난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인가? 게으른 것인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구상의 부는 무한하지 않고 총량이 있다.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들은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못 받아서 적은 게 아니다.

열심히 사는데 가난한 이유, 운동선수인데 큰 병에 걸리는 이유, 성품 좋은데 사기당하고 사는 이유 같은 것에는 정답이 없다.

20년 넘게 장사하다가 그만둔 사장님 내외가 재산은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분들은 젊은 날 등산 가는 일도, 성당 가는 일도 포기하고 장사하는 일을 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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