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의 친구라 불린 알버트 슈바이처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똑똑했던 인물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는데 슈바이처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는 신학박사였고 철학박사였으며 뛰어난 음악가였다.
대학 교수로 한평생을 보낼 수도 있었고 학자로서의 명성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명성을 얻는 길을 떠나서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서의 삶을 택했다.
이런 뛰어난 인재가 그런 비천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시대나 사회에 굉장한 손해라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슈바이처에게 거기서 뭐 하는 거냐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그런 말에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고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슈바이처가 스물한 살 때, 우연히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들 같으면 ‘그렇구나!’하면서 고개 몇 번 끄덕이면 끝나는 이야기인데 슈바이처는 달랐다.
그 말을 듣고 마치 자신이 아프리카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처럼 여겼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그들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그들을 잘 도와주려면 일단 자신이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 배우고 익힌 것들을 아낌없이 아프리카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풀어갈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도 필요했기에 늦은 나이에 의학 공부도 했다.
그는 이렇게 스물한 살 때 자신이 세운 계획을 평생 실천하면서 살았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그 계획을 계획으로만 끝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 자신을 보더라도 그렇다.
학창시절에 방학 때만 되면 도화지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스물네 칸을 나눠서 시간 계획표를 그렸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계획표대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하루도 안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이루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지나간 시절에 계획대로 꾸준히 뭔가를 했더라면 지금쯤이면 대단한 일들을 이루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슈바이처뿐만 아니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꾸준한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이지만 그 점을 찍는 일에 꾸준함을 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 점 한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한 선 한 선이 모이면 넓은 면을 이룬다.
꾸준함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 산골에 우공이란 인물이 살았는데 식구들을 모아놓고 산을 깎아내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부인에게는 계속 흙을 퍼 나르다 보면 못할 게 뭐가 있겠냐고 대답했다.
그 꾸준한 노력에 하늘의 옥황상제도 감동해서 그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도움으로 진짜로 산을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우공의 나이가 몇이었냐 하면 90세가 다 된 나이였다고 한다.
남들 같으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나이인데 우공은 매일 삽을 들고 나가서 흙을 옮겼다.
식구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 자신이 솔선수범하며 꾸준하게 산을 옮겨갔던 것이다.
슈바이처도 그랬다.
그가 세운 계획도 대단했지만 그를 정말 위대하게 만든 것은 일평생 이어갔던 그의 꾸준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