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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30. 2022

같이 슬퍼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뜬 후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몇 시인가 확인하고 또 습관처럼 포털사이트의 메인 뉴스를 들여다봤다.

이게 무슨 일인가?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죽. 었. 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쓰나미가 몰려온 것도 아니다.

‘압사’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을 눌러왔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이런 사고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가 있었을 때,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봐야만 했을 때,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제발, 제발, 제발.

그런데 나의 부르짖음이 너무 약했는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너무나 속상했다.

너무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줄 알았다.

재난에 잘 대응하겠다는 높은 양반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재난을 방지할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의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재난은 소리 없이 다가와서 너무나 큰 고통의 소리를 지르게 했다.

이십여 년 잘 키웠을 텐데, 건강하고 예쁜 아들과 딸들이었을 텐데.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이 내 마음을 후벼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시려나 암울하기만 하다.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위로할 방도가 없다.

내 아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괜찮다고 해도 남이 괜찮지 않으면 그건 괜찮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아프다.

기분 좋은 가을날이었다.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휴일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픈 날이 되었다.




서른 살 즈음에 다녔던 교회에서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을 만났었다.

항상 웃는 얼굴과 밝은 목소리가 좋았다.

아빠가 안 계셨는데 돌아가신 지 오랜 줄 알았다.

어느 날 슬픈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삼품백화점이 무너질 때 그곳에 계셨다고 말이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니까 남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내 옆에서 누군가는 그때 울부짖고 있었다.

머리 빡빡 밀고 논산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내무반 내 옆자리에 자리한 전우가 있었다.

대구에서 온 호리호리한 친구였다.

나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깡다구 있는 경상도 남자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그가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자기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가 날 때 그 곁에 계셨다고 말이다.

장례식에 가서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그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타인의 눈물은 타인의 눈물뿐만 아니라 나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와는 상관없는 고통이 아니라 나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힘내라는 말속에는 나는 힘이 있는데 당신은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가서는 같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가서는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에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안산에 갔었던 것도 그 마음 때문이었다.

꽃 한 송이 올려놓은 것밖에 없지만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나의 눈물도 한 방을 보태주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나 싫다.

눈물 한 방울 보태주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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