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Nov 05. 2022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떠오르는 것들


해마다 10월 마지막 날이 되면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온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그 노래가 얼마나 파급력이 강한지는 1982년에 발표된 노래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국어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잊혀진’이라는 말이 맞춤법에 어긋난다며 ‘잊힌’이 맞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잊힌’이란 말보다 ‘잊혀진’이라는 잘못된 표기의 말을 더 좋아한다.

<잊혀진 계절>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그 노래를 좋아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추억하게 된다.

작년 10월 마지막 날에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번 10월 마지막 날에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도 생각해 본다.

기독교인인 나에게 있어서 10월의 마지막 날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독일의 수도사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이야기이다.

1517년 10월 31일이었다.

당시 구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마틴 루터는 성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도승이었다.

평생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고민들이 생겼다.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고민인데 당시의 교회법이나 교리로서는 그 고민들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던 끝에 루터는 과감하게 자신의 무지를 밝히고 누군가 자신에게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교수가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서 자신은 잘 모른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그렇게 했다.

대학교회의 현관문에 자신이 잘 모르는 신학적인 논제 95가지를 적은 종이를 붙여 놓았다.

제발 알려달라는 외침이었다.




95개의 주제들은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리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교회는 당장 그 종이를 떼어내고 루터를 야단쳤다.

하지만 그 사이에 여러 학생들이 그 내용을 베낀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궁금해했던 내용인데 루터라는 교수도 그 문제들을 궁금해했다는 사실에 반가웠을 것이다.

95개 항목의 내용들이 거론되는 곳마다 사람들은 열띤 토론을 치렀다.

불과 200년 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도 그들의 토론에 한몫을 했다.

구텐베르크 대학에 붙인 종이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삽시간에 독일 전역에 전해지게 되었다.

교황청에서는 루터를 파문하였고 극성스러운 신자들 중에는 루터를 암살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강력한 힘으로 그 소란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힘으로 대자보는 떼어낼 수 있어도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1517년 10월 31일 이후 독일을 시작으로 해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파도를 탈 수밖에 없었다.

로욜라 같은 이들은 가톨릭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하며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발표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목숨을 잃었다.

어디를 가나 유럽은 암흑천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그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머지않아 새벽이 올 것을 믿었다.

‘Post Tenebras Lux!(어두움 후에 빛이 비친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믿었다.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해마다 10월 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단순히 신앙적인 기념일만이 아니다.

아직도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곧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날로 지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