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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30. 2022

귀뚜라미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글들을 좋아한다.

내가 동물애호가도 아니고 환경보호를 외치는 사람도 아니지만 최재천 교수의 글들을 읽으면 나도 지구에 무엇인가 이바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최 교수의 짧은 글에서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흔히 못된 사람을 지칭할 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는데 최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짐승이라고 해서 인간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짐승들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들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깨달음이 들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최 교수의 글을 보면 길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에게서도 배우게 되고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에게서도 배우게 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만물을 다스리라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게서 잘 배워서 잘 유지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가을밤이면 귀에 익숙했던 귀뚜라미 소리가 있었다.

도시생활을 하고 있어서 요즘은 잘 듣지 못하지만 전깃불을 끄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이 도시에서도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뚜라미가 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들이 소리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다 소리를 내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촉각을 이용하고 어떤 것은 후각을 이용하며 또 어떤 것은 시각을 이용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사람의 의사소통은 이 4가지를 다 사용한다.

만지면서 소통하고 냄새를 맡으면서 소통하고 말을 하면서 소통하고 들으면서 소통한다.

귀뚜라미가 제일 잘하는 의사소통의 방법은 수컷이 소리를 내고 암컷이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들으면 반응하게 된다.

수컷이 내지른 소리에 찬성하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할 것이다.

수컷이 암컷에게 의사소통하자며 딴지를 거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바야흐로 귀뚜라미에게 짝짓기의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 모든 수컷 귀뚜라미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귀뚜라미는 공작새처럼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반딧불처럼 휘황찬란한 불빛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귀뚜라미에게 있는 재능은 찌르르르 구슬픈 소리를 내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귀뚜라미의 소리는 우리 사람들처럼 입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윗날개를 서로 비벼대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앉아 있는 귀뚜라미에게 날개는 뒤로 팔을 뻗은 자세처럼 등 뒤에 있다.

그 등 뒤에서 날개들을 서로 비비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가 그 동작을 따라 해 보려니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

두 손을 비벼서 소리를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귀뚜라미라고 해서 그 일이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을밤이면 어김없이 그렇게 소리를 낸다.




최재천 교수가 귀뚜라미를 관찰했더니 어떤 녀석은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새벽까지 울어대더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무려 11시간이나 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암컷 귀뚜라미에게 자신을 좀 봐달라며 애원하는 소리를 그렇게 길게 외치고 있었다.

그날 11시간을 쉬지도 않고 울어댔던 귀뚜라미의 삶은 무척 고된 하루였을 것 같다.

수컷 귀뚜라미가 계속 날개를 비비면서 소리를 내는 중노동을 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암컷 귀뚜라미에게 자신을 알리는 행동이다.

그런데 암컷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또 어딘가에게 있을 또 다른 암컷 귀뚜라미를 부르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절하게 느껴졌다.

최재천 교수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귀뚜라미를 보면서 그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귀뚜라미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소원하는 것을 위해 열한 시간을 간절히 부르짖었던 적이 있었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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