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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5. 2022

담을 잘 쌓아야 사이좋은 이웃이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들은 계절이 변할 때 찾아서 읊기에 딱 좋다.

<가 보지 않은 길>은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단풍잎 무성한 늦가을 분위기가 절로 묻어난다.

<자작나무>라는 시는 줄기가 하얀 자작나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눈 쌓인 겨울에 자작나무 줄기를 그네 삼아 타고 놀았던 시인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세상은 사랑하기에 딱 좋은 곳,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른다.”라는 시구에 이르면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는 새봄이 오면 집 안팎에 둘러보아야 할 일들도 많았다.

그의 시 <담을 고치며>를 보면 담을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담장을 망가뜨려 놓았다고 한다.

얼어붙은 땅이 부풀어 오르면서 담장을 망가뜨리고 또 사냥꾼들이 지나가면서 망가뜨리기도 한다.




구멍이 나고 무너져내린 담장을 다시 쌓아야 하는데 꼭 다시 쌓아야 하는지 시인은 고민을 한다.

담장은 나 혼자만 쌓는 게 아니다.

이웃과 함께 쌓아야 한다.

왜냐하면 담장은 나와 이웃과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웃을 불러서 함께 담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날짜를 잡아서 둘이 같이 담장을 따라 걸었다.

담이 무너진 곳이 보이면 잠시 멈춰서 돌멩이로 구멍을 메우고 무거운 돌은 둘이 같이 들어 올린다.

그러면서 제발 다시는 무너지지 말라고 주문을 외우다시피 한다.

마치 무슨 놀이를 하는 것 같은데 시인은 그렇게 놀기가 싫다.

계속 돌을 만지다 보니까 손도 거칠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죽 이어지던 담장이 숲에 이르자 자연스럽게 끊겼다.

저쪽은 소나무들이 있고 이쪽은 사과나무들이 있었다.

담장이 없어도 사과나무가 경계선을 넘어가서 떨어진 솔방울을 먹지는 않지 않느냐며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시인은 여전히 담을 쌓는 게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담장이 없어도 나무들은 저렇게 잘 지내는데 우리라고 다르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제 담장 같은 것은 쌓지 말고 지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 사람은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답답한 시인은 그 이웃 사람을 좀 가르쳐주고 싶어 한다.

왜 꼭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느냐, 담을 싫어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자꾸 담을 망가뜨리는 것 아니냐, 담을 쌓아서 도대체 무엇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냐, 누구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다.

시인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는데 이웃은 시인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석기시대의 야만인처럼 두 손에 돌을 잔뜩 들고서 담을 쌓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딱 한마디이다.

아마 그의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인 것 같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담장이 필요하다.

담이 없으면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니까 더없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담이 없으면 오히려 더 불편해질 뿐이다.

이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이다.

그래서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나와 너 사이에 담을 쌓는다.

어떤 지역에서는 흙으로 쌓고 어떤 지역에서는 돌이나 나무로 쌓기도 한다.

그 담장에 기대서 내가 보호를 받고 그 담장에 기대서 이웃이 보호를 받는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 사이좋은 이웃이 된다고 했다.

사이좋다는 말은 일정한 거리(사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거리가 있어야 좋은 사이이다.

그 사이를 충분히 가질 수 없을 때는 담을 쌓는다.

담이 우리에게 사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담이 무너지면 다시 쌓아야 한다.

사이가 끊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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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고치며> - 로버트 프로스트


뭔지

담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담 밑의 언 땅을 부풀어오르게 하고,

담 위의 돌들을 넉넉히 지나다닐 수 있는 틈을 만들거든요.

사냥꾼들이 하는 짓은 또 다른 문제예요.

그들이 담을 다 망가뜨리고 지나간 뒤

나는 그걸 수리한 일이 있지만,

허나 그들은 토끼를 몰아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해 주거든요.

내가 지금 말하는 틈은

누가 그랬는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봄에 수리하다 보면 그렇게 돼 있단 말예요.

나는 언덕 너머 사는 이웃집에 알리고,

날을 받아 만나서 두 집 경계선을 걸으며

두 집 사이에 다시 담을 쌓아 올리죠.

우리는 우리 사이에 담을 유지해요.

담 양쪽에 떨어진 돌들을 서로가 주워 올려야 하고요.

어떤 돌은 모가 나서 넓적하고 어떤 건 거의 공 같아서

우리는 그것들을 올려놓으며 주문을 다 외워야 해요.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제발 떨어지지 말아다오."

돌을 만지느라고 손이 거칠어집니다.

뭐 그저 양쪽에 한 사람씩 서서 하는

좀 색다른 놀이지요. 좀 더 갑니다.

그러면 담이 소용없는 곳이 나오지요.

저쪽은 전부 소나무이고 이쪽은 사과나무예요.

내 사과나무가 경계선을 넘어가

떨어진 솔방울을 먹진 않겠지요, 하고 그에게 말합니다.

그는 단지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고 말할 뿐이에요

봄은 나에게는 재난의 계절, 그래서 나는 혹시

그를 깨우쳐 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요.

"왜 이웃끼리 사이가 좋아야 하나요?

소를 기르는 곳에서나 그렇지 않아요?

여기는 소도 없는데요 뭐."

담을 쌓기 전에 알고 싶어요.

내가 도대체 담으로 무엇을 막으며

누구를 해롭게 하고 싶어하느냐에 대해서 말이죠.

뭔가 담을 싫어하는 게 있어서

그게 담을 무너뜨리고 싶어합니다.

나는 그에게

"요정이에요."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게 꼭 요정인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나는

그가 스스로 알게 되기를 바라지요.

나는 그가

구석기 시대의 야만인처럼 양쪽 손에 돌을 잔뜩 거머쥐고

옮기는 걸 봅니다.

내가 보기엔 그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숲이나 나무 그늘 때문만은 아닐 거에요.

그가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되풀이합니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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