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려고 나갔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차르륵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일찍 어두워지길래 오늘은 눈이 오려나 생각했는데 눈은 안 오고 겨울비가 내렸다.
눈도 좋아하고 비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 대신 비가 와도 기분이 좋았다.
집에 가서 우산을 가지고 올까 생각하다가 겨울비를 맞는 게 또 얼마 만이냐며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이 비가 가문 어느 땅을 적셔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가물다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은 가물어 있다.
내 기억에도 우리나라는 많이 가물었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를 틀면 ‘쏴’하게 물이 나오지만 불과 몇십 년 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마당에 둥그런 우물과 펌프가 있었던 집도 있었다.
마을에 공동수도가 있었지만 그것도 마르면 가끔씩 물차가 와서 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물이 참 귀했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 걱정을 해야 했다.
더 오래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만큼 비가 와야 백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지 세종대왕은 비의 양을 직접 재 보려고 했다.
세자 문종의 건의로 측우기를 만들었는데 현대의 기술과도 차이가 거의 없는 완벽한 측량물이었다.
지름 14센티미터의 반듯한 원통으로 만든 것은 어느 방향에서 비가 내리더라도 제대로 물을 수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네모든 세모든 각진 통으로 만들면 빗방울이 튕길 수가 있으니 제대로 측량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거나 측우기까지 만든 이유가 있다면 그만큼 물에 대한 애착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이 없으면 백성이 죽으니까 임금은 물 걱정을 해야 했다.
정조대왕 때는 3년 동안 가뭄이 이어지니까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마침 그 순간에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조는 성군이 되었다.
집에 수도를 개설하면 물 걱정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촬촬 나오던 수돗물이 종종 끊기는 날이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당장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셨다.
아예 커다란 물통을 부엌 옆에 장만해서 언제 끊길지 모르는 수돗물에 대비하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땀이 나면 수돗가로 달려갔다.
그 아이들이 수도꼭지를 입에 물고 쪽쪽 빨아 마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수돗물이 맛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 땅속에 묻힌 수도관에 있는 물이라도 빨아들이려 했던 것이다.
수돗물이 이제 곧 나올 것 같은 ‘쏴’하는 소리가 나면 물이 나온다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비님 오시라’고 간절히 빌었다.
과학자들은 수소 두 개에 산소 한 개가 합쳐진 H2O일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비를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물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박화성 선생은 <한귀(旱鬼)>라는 소설을 썼다.
가물 한(旱) 자에 귀신 귀(鬼) 자인데 가문 것이 귀신과 같다는 말이다.
물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상황을 잘 다룬 책이다.
다행히 내 인생에서 지금껏 물이 없어서 두려워했던 적은 없다.
기껏 해봐야 지리산 종주를 할 때 물통에 남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언제 마실까 걱정했던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행운아이다.
물 걱정 없는 시대를 살고 있고 물 걱정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오래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물 걱정을 마세요.’라고 노래했던 개그맨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노래해서 그런지 물 걱정이 없다.
때가 되면 들르는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물을 좀 많이 마시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물을 잘 안 마신다.
물이 귀했던 시절을 조금 겪었기 때문에 물을 조금만 마시려고 하는 습관이 들었나 보다.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