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에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일제의 군 장성들을 향해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행하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시락 폭탄이 아니라 물통 폭탄이라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일제의 군 지휘관 여러 명이 죽었고 부상을 당한 자들도 많았다.
당시 중국 국민당 주석인 장개석은 4억 명의 중국인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청년 한 명이 해냈다며 윤봉길 의사를 치하할 정도였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일제의 전승기념일 행사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엄청나게 체면이 구겨진 일제는 그 일로 말미암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그들은 길거리에 헌병과 밀정들을 풀어놓아서 지나는 사람들을 감시하였다.
도시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였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을 멈추고 일단은 잠행을 택하였다.
철저하게 숨어 지내면서 이 폭압의 시기가 빨리 지나기를 바랐다.
그즈음에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얼마 전에 한 어린이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마침 어린이날도 다가오고 그 아이의 생일도 다가왔다.
안창호 선생은 그 아이에게 생일선물로 과자를 사 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에 갑자기 일제의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과자를 사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내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일제의 검문검색으로 영락없이 잡힐 것 같았다.
나 같으면 그런 핑계를 대면서 선물은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일본 경찰에게 잡혔고 윤봉길 의사와 관련이 있다는 죄목으로 4년 형을 언도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창호 선생이 무모하게 길을 나섰다고 생각되었다.
아이와의 약속이니까 나중에 지킨다고 미뤄도 될 일 같았다.
지금 사정이 말이 아니어서 도저히 선물을 주기가 힘들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창호 선생은 그런 꾀를 내지 않았다.
편법을 쓰지도 않았다.
자기가 약속을 했으니까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평상시에도 안창호 선생은 약속을 잘 지키기로 유명했었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에도 약속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 바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령을 피우고 편법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라고 하였다.
당시 우리 사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한 국가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바로 약속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했다.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했던 안창호 선생의 말을 떠올리면서 혹시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아니라 지키지 않은 약속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한 약속을 밥 먹듯이 남발한 것 같다.
대부분 아직까지 지키지 않았다.
전화 한번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여지껏 전화하지 않았다.
꼭 지키겠다고 강조하면서 한 약속은 꼭 안 지켰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었다고 하지만 엄연히 약속은 약속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지금의 나를 보셨더라면 쯧쯧 혀를 차면서 굉장히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라며 그것이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원수를 너무나 가까이하며 살아왔다.
‘약속’은 달랑 두 글자로 구성된 말이다.
한숨에 읽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엄청나게 무겁다.
반드시 지켜야 할 인생의 짐이니까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