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처럼 나누는 이 말처럼 새해에는 정말 많은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건강 약해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며 일하는 곳이 안정되고 부모님과 자녀들 모두 평안했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들이다. 이 바람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분명 어딘가에서 펑크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세계 경제가 불황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연히 우리가 일하는 직장과 일터도 힘들어질 것이다.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고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강하게 맞받아치면서 한반도의 전쟁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은 눈에 선하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이와 같은데 새해에 복을 많이 받는다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우리 시대 최악의 한 해가 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해 보는데 나는 새해에 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로 했다. 어차피 앞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지금 여기서 희망이든 절망이든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짐작이나 할 뿐이다. 희망을 걸었는데 그 희망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절망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가졌던 희망이 100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 희망의 백분율에 몇 퍼센트였을까 계산해 보면 알 수 있다. 절망이라고 했던 일도 따지고 보면 1% 정도의 희망을 건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99%의 절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1%의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불치의 병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치료제도 치료약도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 치료의 가능성이 있는 시제품을 개발했다면 그건 분명 희망이다. 그 시제품의 효과가 1%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1%의 희망이다. 나는 99%의 절망을 믿는 게 아니라 1%의 희망을 믿을 것이다. 그래 맞다. 희망은 지식이 아니다. 희망은 믿음이다. 지식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믿음은 증명하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명천지에 알지도 못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희망처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너무나 많이 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내 자녀들이 예쁘고 멋있어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내 자녀들이 예쁘고 멋있다. 내가 마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다. 희망을 믿으라는 말이다. 저 앞에 희망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한 걸음씩 나아가자는 말이다. 한 걸음 나아갔으면 한 걸음만큼 희망을 가진 것이고 한 걸음만큼 희망을 누린 것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희망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희망을 향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희망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희망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마치 길과 같은 것이다. 길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이 걷고 그 뒤를 또 다른 사람들이 걷다 보니까 길이 생긴 것이다. 희망도 이와 같다."고 중국의 문호 루쉰이 말했다. 나도 희망을 걷기로 했다. 희망을 거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직접 희망을 걸어가기로 했다. 내가 희망을 믿고 희망을 걸어간다면 절망은 나에게 차지할 자리가 없다. 올해는 희망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