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by 박은석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후회할 때가 있다.

‘내가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일들이 있다.

대학생활 내내 그리고 삼십 대 중반까지는 ‘내가 왜 그 대학교 그 학과를 갔을까?’라는 후회를 했다.

‘그때 나는 왜 도전하지 못했을까? 모험을 걸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나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후회할 때도 있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모든 직장인들의 공통적인 경험일 것이다.

사람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많았는데 내가 그중에서 한 가지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만약 타임머신이란 게 있어서 10년 전, 20년 전 그때의 선택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뜻 그럴 것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10년 전, 20년 전인 그때도 나는 그 선택의 순간까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고민 끝에 가장 좋은 결정이라고 해서 선택한 게 그때의 결정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까 그 선택에 아쉬움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볼 수 있는 시력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시력 검사를 할 때 그런 기분을 느낀다.

한쪽 눈을 가리고 간호사가 가리키는 시력검사표의 숫자를 자신 있게 대답한다.

“3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간호사의 표정이 별로였다.

나중에 두 눈으로 자세히 보니까 3이 아니라 2였다.

2를 3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분명히 내 눈에는 3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 눈이 인지하는 대로 반응했을 뿐이다.




지난날 내가 선택한 것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나는 그때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했다.

산술적인 계산도 해보았다.

내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한 가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 와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나의 선택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당시에 나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수준이 그 정도였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타임머신을 타서 지난날 그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그때의 그 선택을 할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보니까 지난날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일이 좀 줄어들었다.

나 자신을 탓하는 일들도 줄어들었다.

그 대신에 나 자신을 위로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난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느라 나 자신을 야단쳤던 날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고 그로 인해서 내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았다.

선택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애써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선택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 그 자체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나의 최선이다.

나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안목에 맞게 선택한다.

내 수준에 딱 맞게 선택한다.

그러니까 그 선택은 나에게 가장 알맞은 선택이다.

큰 트럭은 한 번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지만 작은 차는 한 번에 많은 짐을 실을 수가 없다.

뱁새는 다리가 찢어지더라도 황새처럼 보폭을 넓힐 수가 없다.

자기에게 맞는 보폭으로 걸을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도 결국은 나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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