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스마트폰 어플을 보니까 가까스로 1만 보를 넘겼다.
가능하면 하루에 만 보는 걸으려고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어 다녀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사무실에 오가면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아 어슬렁거리면서 걷는 걸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음으로는 만 보를 채울 수가 없다.
작정하고 걷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가끔 내 마음에 어떤 바람이 불면 엉뚱한 걷기를 시도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끝자락이니까 여기서부터 탄천길을 걸어서 잠실까지 가기도 한다.
내 걸음으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
언젠가는 산길을 걸어서 남한산성까지 가보기로 했다.
옆 동네인 무지개마을 12단지 아파트 옆으로 불곡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거기서부터 산길을 걸어서 7시간 만에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에 도착했었다.
내 동생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벌써 대여섯 번은 다녀온 것 같다.
10년 전에 나에게 산티아고에 꼭 한 번은 다녀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시도조차도 못 했다.
오랜만에 고향 제주도에 갔더니 어렸을 적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 다녔던 길들도 무슨 무슨 올레길이 되어 있었다.
고향 동네 위쪽에 있던 절물자연휴양림 옆으로 사려니숲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길래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빽빽한 밀림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걸어 다니기 좋은 길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이곳까지 오려나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사려니숲길을 걷는다고 한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걷는지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사람은 걷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기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굴러다니다가 걷기 시작하면 부모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걷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밀드레드 노먼(Mildred Norman)이라는 미국 여성은 부지런히 걷기만 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전에 미국 대륙을 6번이나 횡단했다고 한다.
온전히 두 다리로 걸어서 말이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1908년에 태어났으니까 미국이 공업화를 이루고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결혼생활도 무너지게 되자 그동안 자신이 추구하며 살아왔던 삶이 더 이상 의미 없게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 숲속을 걸으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달빛이 비치는 조용한 곳에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순례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고 평생 걷는 삶을 살게 되었다.
1953년 1월 1일에 밀드레드 노먼은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고 순례길에 올랐다.
지난날의 삶과도 결별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피스 필그림(Peace Pilgrim)으로 다시 태어난 노먼은 28년 동안 4만 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그녀는 길을 걸으며 말과 행동의 일치를 추구하였고 평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복잡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녀의 단순한 삶을 통해 큰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평생 걸어 다니던 그녀는 1981년 7월에 미국 인디애나주의 낙스라는 도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길 위에서 살다가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달랑 옷가지 하나만 걸친 채 걷고 또 걸은 그녀에게서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
마음이 복잡하고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피스 필그림처럼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