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농다리를 보면서 느낀 생각

by 박은석


충청북도 진천군에 가면 ‘농다리’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다리를 볼 수가 있다.

세금천이라는 냇물 위에 세워진 돌다리인데 고려시대 초기에 임장군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임장군이 어느 날 이 미호천을 건너려는 아낙네를 보게 되었는데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냇물 건너 친정에 가는데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임장군은 그 아낙네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 효성에 감동하기도 해서 직접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물론 전설 같은 이야기다.

다리의 쓰인 돌의 크기로 볼 때 한두 사람의 힘으로 운반할 수 있는 돌이 아니다.

수십 명이 동원되어서 공사를 감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언제 이 다리가 축조되었는지, 그리고 임장군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임씨 성을 가진 인물 중에서 특출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농다리라는 이름의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농교(籠橋)’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농(籠)이라는 글자는 바구니를 뜻하는 말인데 아마 다리를 이루고 있는 교각이 마치 바구니처럼 배불뚝이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왜 농다리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 농다리 덕분에 다리 이편에 있던 사람이 다리 저편으로 무사히 잘 건너다녔다는 것이다.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잘 교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리 하나 놓았을 뿐인데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고 마을의 문화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임장군이 혼자 만들었는지 아니면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리를 세우느라 고생한 사람들은 분명히 다리의 이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 큰 돌들을 낑낑거리면서 옮겨 놓았을 것이다.




농다리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보이기도 하고 큰 지네가 기어가는 모양을 본뜬 것 같기도 한다.

물길의 흐름을 막지 않고 그 물길 위에 살포시 얹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큰 비가 내리더라도 휩쓸려가지 않고 물길을 터 주면서 그 위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설령 물이 너무 많아서 다리를 잠기더라도 잠수교처럼 물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농다리를 이루고 있는 돌들은 붉은색 빛깔을 띠는데 아마 다리 축조 공사가 완공되었을 때는 붉은색 빛깔 때문에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도 농다리에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가 바로 농다리길이라고도 한다.

아아들을 데리고 가면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하는데 농다리는 두들겨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농다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예술성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다리가 크고 웅장하기 때문도 아니다.

고작 해봐야 100미터도 안 되는 길이이고 높이도 1미터를 조금 넘길 뿐이다.

내가 농다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려 초 임장군 때 축조된 다리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천 년은 족히 되었는데 여전히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있는 다리이다.

농다리를 쌓은 이유도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다리가 조금 약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농다리는 아직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버텨내고 있다.

흔히 나무를 심으려면 10년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우려면 100년을 내다보라고 한다.

그런데 농다리는 무려 1천 년을 내다보면서 지은 다리이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런 지혜와 안목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유전자를 지닌 후손들이다.

그러니 제발 그 유전자를 잘 발전시켜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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