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국가인 튀르키예를 형제처럼 도와줬으면 좋겠다

by 박은석

지난 2월 6일에 발생한 튀르키예의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가 수만 명이나 된다. 아직 생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뉴스는 연일 희생자가 몇 명인지 보도하고 있다. 그에 따라 텔레비전 자막에는 숫자가 찍힌다. 튀르키예 지진 희생자들도 하나의 숫자로 취급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사람을 숫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튀르키예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뉴스는 숫자로 표기하려고 한다. 몇 년도에 국교를 맺었으며 무역규모는 얼마나 되고 한인들은 몇 명이 살고 있으며 땅덩어리는 한반도의 몇 배가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아무리 숫자를 나열한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튀르키예와 우리나라의 관계를 다 대변해주지 못한다. 튀르키예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숫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그 진한 핏방울이 튀르키예 국민과 우리 국민들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튀르키예의 무너진 잔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튀르키예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짐을 꾸리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재난 상황을 보면서 함께 마음을 아파했었다. 하지만 유독 튀르키예의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온정이 가는 이유가 있다. 튀르키예가 먼 나라, 남의 나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르면서 튀르키예와 대한민국은 남이 아니라 형제 국가임을 서로가 재확인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들을 터키라고 불렀는데 2022년에 그들이 나라의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 강대국에 의해서 터키(turkey, 칠면조, 겁쟁이)로 불려 왔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칠면조도 아니며 겁쟁이도 아닌 용감한 투르크족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되찾았고 자존감을 세웠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투르크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우리가 대한 사람, 한민족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그들의 조상들이 세상을 호령했을 때도 그들은 오스만튀르크라 불렸다. 근대 국가의 초석을 놓은 그들의 국부의 이름도 아타튀르크이다. 그렇다 그들은 투르크족이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그들을 ‘돌궐(突厥)’이라고 불렀다. 돌궐은 ‘투르크’를 한문식으로 발음한 말이다. 그들은 고구려와 함께 만주 벌판을 달렸던 용맹한 기마민족이었다. 고구려와 사이좋게 지내던 그들은 상당수가 고구려에 귀화하여 고구려의 국민이 되었다. 후에 고구려가 신라에게 멸망하자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친절을 베풀어주기도 하였다. 동쪽에 자리를 잡은 돌궐족의 일부는 고구려의 유민들과 함께 몽골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튀르키예와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한 가족처럼, 사촌처럼 지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인지 튀르키예와 우리는 거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형제의 나라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튀르키예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무려 1만 4,936명의 병력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튀르키예가 지원한 병력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중에서 721명의 군인이 전사했고 2,147명이 부상을 당했다. 튀르키예는 단순히 말로만 형제 국가가 아니라 피와 생명을 함께 나눈 혈맹 국가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나라인 튀르키예가 지금 큰 슬픔에 처해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 튀르키예가 우리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어주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그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어주어야 할 때이다. 형제의 아픔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형제 국가인 튀르키예를 잘 도와주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