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야 Jan 21. 2020

일상이 여행이 된다

고향 부산을 여행하다


내 고향은 부산이다.

초등학교 6학년 말에(그 당시엔 국민학교였다.) 서울로 전학을 갔다. 온통 사방에 표준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서울 친구들은 부산에서 전학 온 나를 에워싸고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했다.


"너 부산에서 왔다며? 부산에선 집에서 밥 먹고나서 집앞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는거야?"

(나의 속마음 대답 : 이 서울것들아! 부산도 바다 없는 곳이 더 많아. 나도 바다는 1년에 몇 번 못 가봐.)


"부산은 마을에 비둘기보다 갈매기가 더 많이 날라다닌다며?"

(의 속마음 대답 : 우리 집은 어촌이 아니야~)


"너 바다수영 되게 잘 하겠네?"

(나의 속마음 대답 : 내가 무슨 해병대니? 나도 수영은 수영장에서만 해~)


TV나 라디오에서나 서울말을 들어봤지 직접 내 눈앞에서 '다소 높은 톤의 세련된 말투'로(그 당시 내 귀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질문을 하는 서울 반 친구들이 참 고급져보였다. 그에 비해 나의 걸걸한 부산 사투리는 왜 그리도 촌스럽게만 느껴졌던지...

어린 마음에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사투리를 티내지 않으려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서울생활 몇 달 동안은 본의 아니게 과묵한 전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는 '부산 출신' 서울 사람이 되었다.


서울로 전학을 오기 전까진 부산에서 바닷가와 다소 먼 '동래구 장전동'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내륙 쪽에 있어서 바닷가보다는 집 근처 산을 더 많이 다녔다. 서울 사람들에게 친숙한 해운대, 광안리 같은 곳 보다는 내게 부산이라는 곳은 금정산, 금강원(지금은 '금강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온천장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일주일에 4~5일은 금정산을 오르내렸고(어릴때는 에너지가 넘쳐 혼자 산을 뛰어다니며 봄에는 쑥을 캐러다니고 시냇물에 다슬기도 잡으러 다녔다.) 특별한 날에는 금강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번 씩은 의식처럼 온천장에 있는 목욕탕으로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일주일치 때를 밀어야만 했다. 할머니의 때미는 손 힘이 얼마나 세셨던지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할머니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그러다 결국 할머니께 붙잡혀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난 후에야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강제 때밀이를 당했다. 그래도 목욕 후에 할머니께서 사주시는 야쿠르트와 아이스크림이 세상에서 제일 맛났다.


 방학을 하고 부산으로 오래간만에 내려왔다. 어린 시절 내 추억의 주 무대였던 부산이 지금은 내게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길거리에서 현지 부산 말을 못 알아듣는 때가 종종 있어 당황했고,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내에서 길을 잃어 버려 헤메기도 했다. 한 겨울인데 활짝 피어있는 동백꽃이 낯설면서 반가웠다. 고향인 부산에서 나는 관광객 또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되었다.

한 겨울에 핀 동백꽃은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다

그동안 서울에 너무 딱 달라붙어 바삐 살아왔던걸까? 서울에선 잠시라도 게으르면 큰일이라도 날것 같이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뛰었다. 부산에서의 나는 친숙한듯 친숙하지 않은 느낌으로 빈둥빈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놀멍놀멍'이라는 말이 있다. '천천히'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인데 최근 며칠동안 나는 놀멍놀멍 부산에서 지냈다.  유랑하듯 목적 없이 걸어다니며 여유롭게 주변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마음의 여유 공간이 넓어질 수록 마음 속에 들어오는 추억거리들이 더 많아서일 것이다. 서울로 다시 올라가게 되면 나는 이 추억거리들을 자양분 삼아 다시 힘차게 매일을 영위할 것이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는데 앞으로는 일상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려고한다. 그렇게될 수 있다면 매일 똑같이 느껴지는 일상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좀 더 여유롭게, 새롭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내 고향 부산을 여행자처럼 돌아다녔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얻는 것이다.  
-여몽-





구독라이킷  그리고 댓글로 응원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식중러가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