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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Sep 17. 2020

내가 식중러가 된 이유

허리가 아프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니시는 할머니는 매일 아침 마당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다.


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식물 잎사귀와 줄기에 물을 흠뻑 뿌리시 시든 잎사귀를 하나 하나 따서 꽃과 잎의 모양새를 예쁘게 다듬어 주곤 하셨다.


딱히 마당이라고 부르기에 초라한 구석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들은 할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빨강, 주황, 분홍색의 꽃이 사시사철 피었다.


제라늄은 할머니께서 제일 좋아했던 꽃이었다.


"저 귀찮은걸 왜 매일 하지?"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처럼 식물들에게 물을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린 내겐 이해 가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려면 매일 물을 줘야하고 물을 주다보면 주변이 젖어서 축축해진다. 그리고 화분에서 흙이 튀거나 쏟아져서 바닥을 닦거나 쓸어야한다.  화분에서 가끔씩 나오는 지렁이나 벌레는 끔찍하게 무서웠다.


"아니, 이게 웬 사서 고생이람?!"


6살이었던 나는 팍팍한 삶에서 자연이 주는  힐링이라는 선물 알 리 만무했다.  이 푸른 생명체들이 어린 내겐 그저 귀찮은 존재였던것 같다. 


이제 식물을 사랑하시던 할머니는 지구라는 별을 떠나셨고, 어리고 철없던  나는 세상의 단맛, 쓴맛을 아는 중년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할머니처럼  수시로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따며 식물을 가꾸고 있다.


종종 누군가 뒤통수를 내리쳐 배신감에 몸서리 칠 때도 , 타인의 생각 없이 내뱉은 면도날 같은 날카로운 말에 마음이 베일 때도 나는 가만히 화분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렇게 속상할 때마다 우리 집 베란다며, 교무실 창가에 화분이 늘어만 가고있다.


여긴 교무실인가 꽃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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