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울하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공황장애 환자도 웃을 수 있다

by 이자까야

최근 공황장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이명현상이 좀 줄어들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 대는 듯한 소리, 그리고 웅얼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남자 목소리가 들릴 때면 머리를 쥐어 뜯고 악악대며 소리를 지르곤했다.


아직도 컨디션에 따라 이명증이 재발하지만 그래도 이젠 음악이나 짧은 유튜브도 볼 수 있다. 문화생활이 얼마만인건지...


그런데 이명증이 호전되어 보게 된 것이 넷플릭스에서 초대박났다던 <더 글로리>였다. 힐링용 따뜻한 드라마가 아니고 하필 잔인한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라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별 생각 없이 보다가 드라마 초반 장면에서 나오는 가학행위에 구토증이 올라왔다.


교내 체육관에서 가해자들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역)을 헤어고대기로 괴롭히는 장면에서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그런데 그 놈의 호기심 때문에 며칠 뒤 그 드라마를 다시 보았다. 학교폭력, 성폭력 등의 잔인한 장면 때문에 초반부는 띄엄띄엄 건너뛰기를 하면서 시청했다. 문동은의 조력자인 강현남(엄혜란 역)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가난, 미성년자, 고아, 여자.


특히 위의 키워드들은 범죄의 타켓이 되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떠올리긴 싫지만 나도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보니 (헤어고데기로 지져지는걸 제외하곤 다 당해본 것 같다) 주인공 문동은의 마음을 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타고난 강철멘탈이던 나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결국 무너져 내렸으니까. 이런 내가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문동은에 더욱 공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한 장면이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 문동은과 강현남이 나누던 대화.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명랑하지만 명랑할 기회가 없다가 숨이 쉬어져서 자꾸만 웃게 돼요.



그 장면 이후 내게 있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문동은에서 강현남이 되었다.


문동은, 강현남 둘 다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들이였지만 나는 현남이 더 좋아졌다. 폭력에 매몰되지 않고 잠깐 동안의 석양 노을 빛에도 "미쳤네~"를 내뱉으며 감탄을 할 줄 알던 그녀.


폭력이란 상처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문동은에게 허를 찌르는 웃긴 말을 하며 문동은에게 본의 아닌 '웃참챌린지(웃음 참기 챌린지)'를 시켜버린 밝은 강현남.


폭력의 희생자인 나도 강현남처럼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폭력과 우울함에 매몰되지 않는것.

우울함이라는 바다에 빠져도 웃음이라는 돛단배를 띄울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 익사당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언젠가 나도 내 몸과 정신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겠지.


나는 미모의 문동은보다 환하게 밝은 강현남이 더 좋다.


나도

"우울하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


이렇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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