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가둔.
열대야, 따가운 빛이 살갗을 아리게 하는.
#1
나는 종종 가던 연희동 냉면집 앞 골목에 있는 처음 보는 카페에 앉아 있다.
낯선 공간, 낯선 기류를 깨트리는 Hi, Nice to meet you.
한국인과 외국인 틈 사이로 영어만을 뱉어내는 기이한 환경 속에 입장한다.
Do you speak Korean?
듣는 건 다 이해하고 할 줄은 아는데 말은 잘 못한다는 겸손한 대답이 이어진다. 그들은 한국어를 끝내 뱉지 않고 나도 그들을 배려한답시고 한국어로 묻지 않는다. 내가 좀 불편하면 되지. 타지에서는 영어가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한국어가 대접받지 못하는 게 내심 섭섭하다.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타지 생활을 그리는 열정은 나의 이른 20대를 보는 것만 같다. 어떠한 선택이 이들의 삶을 이끌지 모르기에 나는 무던한 응원을 건넬 수밖에 없다.
시간의 가치가 이제는 너무나도 크게 와닿아서, 나는 또다시 내가 꿈꾸던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더 이상 경험으로 채우기에는 충분히 즐겼으니까.
모든 행동에 의미를 찾고 싶으니까.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멋지고, 나는 그들을 첫눈에 반할 만큼 존경하니까.
나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의 호기심은 늘 멋진 것들에 끌렸다. "멋지다"의 정도와 기준이 시기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다가왔을 뿐. 나에게 요즘 쿨함은 자기표현에서 오는 당당함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예술적인 면모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쏟는다. 스스로의 방향을 정의 내리고 방황하더라고 올곧게 걷는 이들에게서 뿜어지는 우아한 Aura가 열대야처럼 뜨거운 빛을 쏟아내고, 나는 유려한 그 빛에 마음이 아릴 정도로 눈이 부시다.
대단해. 멋져. 최고야. 당신을 바라보는 이 순수한 감정을 꾸밈없이 내뱉고 싶다. 사랑이 무엇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서툰 사랑이 어색했던 그때처럼. 나의 말에 어떠한 의도도 내면의 언어도 배제한 채 순수한 단어의 힘만 전달되면 좋겠다. 마음을 전하는 것도 의심을 받게 되는 퍽퍽한 세상이 밉다.
#2
겨울바다, 귤과 이불
여름밤, 보사노바, 가벼운 술
가을 풍경이 주는 색채, 독서
개화, 아카시아 꽃, 연두색
계절마다 좋아하는 단어가 다르지만, 특히 향기로 기억되는 순간이 좋다. 들이마시는 숨에 스치듯 지나가는 향기가 비슷한 장면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른다. 향기가 장면을 부르고, 장면은 뇌리에 박힌다. 그래서 벌들이 좋아하는 꽃이 있나. 향기가 기억에 남는다는 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 공기의 온도, 머금은 향의 농도, 스친 시간의 정도까지 짧은 순간에 각인되는 과정인데. 나는 어쩌다 스쳐가는 그 향기를 붙잡았을까.
#3
오리지널리티의 회복.
각자가 가진 고유함을 지속하기 힘든 사회. 너무나도 빠른 변화와 불완전함이 세상을 잠식시키는 시대. 하지만 이러한 구조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함을 지켜 나가는 모든 이들을 예술가라고 칭하고 싶다. 이러한 과정을 걷다 보면 누구나 회복이 필요한 시기를 마주하게 된다. 터져 나오는 정보와 선택의 기로 속 단 한순간의 클릭이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세상.
회복이 간절하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고 싶다. 편안함과 욕심은 내려두고 작고 소중하게 반짝이던 모래알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에 느껴지는 모래의 열기가 발바닥에서부터 다리와 가슴을 거쳐 숨 끝으로 올라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모래알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천천히 걸어 나가고 싶다.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저 해내고 싶다. 소리가 이렇게 명확한데 무엇이 두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