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돈 좀 있을까?

딸아이 옷 12벌을 2만 4천 원에 사 왔던 그날

by 온져니

아마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12월 그날이었다.


나의 두 딸은

대부분 누구 옷을 물려 입거나,

때때로 명절이나 생일에 받은 꼬까옷이

전부였다.


두 아이를 위해 큰 맘먹고 나 선 길

오만 원짜리 두장의 현금을 준비했고

결의에 찬 마음으로

오전부터 서둘러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목적지는 창고형 아동복 매장이었다 .

무려 티 5장, 바지 3장에 3만 5천 원이었어요

자주 가는 커뮤니티 후기를 보자마자

지도에 가야 할 곳이라 등록했고,

다음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많이 들떴었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옷을 사줄 수 있겠구나.

겨울 외투도 좀 비싸더라도 하나 사야지

입고 싶어 한 치랭스며, 샤랄라 원피스며

다 담아야지 하고 속도를 냈다.


복잡한 주택가 비포장 도로를 따라

외진 창고형 매장 입구에 드디어 도착

한 번 휘 둘러보는데,

아무리 싸다지만 담을 게 하나도 없는

먼지만 풀풀 날리던 그곳.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돌아보는데

벽에 반듯하게 걸린 건

인터넷보다 조금 싸거나 비싸거나

아이가 원한 반전 티셔츠는 생각보다 가격이 나갔다.


그럼 그렇지 싸게 파는데 이유가 있지


매대 앞 옷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그곳이 후기에서 본 사진이었다.

상자 골판지에 무심히 적힌 숫자들

모두 2천 원, 모두 3천 원 , 모두 5천 원.


몇 번 휘적거리다 돌아서려는데

생각보다 꽤 쓸만한 기모 잠옷 바지를 발견했다.

살짝 큰 것 같긴 한데 2천 원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도 아깝기도 해서

내년에 입힐 요량으로 바구니에 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하 광산에 은을 캐듯

나는 더 밑으로 밑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맞는 옷을 찾아냈고

30분 후 심마니처럼 산삼 아닌

옷을 캐내기 시작했다.


더불어 주인장은 갓 들어온

신상을 마구 털어놓더니

급기야 3만 9천 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치마도

2천 원 매대에 주저 없이 던지는 게 아닌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찾으러 갈 시간은

이제 30여분 남았고

쌓여가는 내 바구니 속 옷을 세어보니 12벌


멈출 수 없었지만 멈췄다

전장에서 살아 나온 사람처럼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지갑을 열었다 2만 4천 원

그리고 현금 할인 10%

거기에 머플러, 겨울 아기 비니까지 덤!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드디어 엄마 노릇 한번 하겠구나

언니 옷만 물려받던 둘째도

이제 자기 몫이 있다는데 얼마나 기뻐할까.


주체할 수 없어 어디든 자랑을 해야 했다.

먼저 신랑이었다.


마! 이게 알뜰맘 flex!!!

바깥에서 열심인 당신을 위해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다.


한껏 받은 칭찬에 어깨가 두둥실

두 번째 전화로 이어갔다.


엄마엄마! 내가 방금 애들 옷 12벌을 샀는데
얼마 주고 샀게? 맞춰봐!

네가 그러는 거 보니까 엄청 저렴하게 샀나 본데?

뭐 그렇지!

3만 원?

아이참, 12벌이라니까!! 가격 4만 원짜리 두 벌도 포함되어 있다고! 다 새 거야 완전

엇 비슷하게 가격을 맞춘 게 억울하고

또 놀라서

내가 얼마나 싸게 샀는지 다시 알리려 했다.


2만 1200원!


나는 신랑 때보다 더 흥분해,

이제 엄마도 손녀들에게 비싸게 옷 사줄

필요가 없다며

애들 금방 크는데 이렇게 발품 파니까

정말 나도 좋고 애들도 좋은 거 아니냐고

싱글벙글 침이 튀도록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딸, 이런 때 찬물 끼얹어서 미안한데
돈 좀 있을까?
......
가끔은 마음이 보랗게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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