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나영석 사단의 작품도 볼 수 있게 됐어.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써 내려가는 문장에 감칠맛이 없달까. 소금이나 간장이 빠진 밍밍한 상태.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의 경계선에도 닿지 않은 아주 애매한 그런 상태. 화성과 목성 사이에 맴도는 ‘이다’ 같은 행성이었다, 난.
질투심은 많았다.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동료 책을 보면, ‘저런 콘셉트이니 가능했지…’ , ‘SNS 구독자 수 후광이 없었으면 안 됐을…’ 이런 속마음을 들킬까 애써 외면했고 진정으로 축하하지 못했다. 이건 어쩌면 단순한 질투심이 아니라 인간 됨됨이 문제로 거론될까 더 꽁꽁 숨겼다. 참 못났다.
그러니 발전이 없었다. 잘된 작품에 마음 열지 않고 어떻게든 나도 그렇게 되어보려고 문을 닫은 것이다. 눈앞에 방법이 있는데 제 발로 걷어차는 형국.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있을 리 없고, 교류가 없으니 늘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잘되고 싶은 욕심만 그득한 채.
아이는 좋은 방패였다. 육아는 지금 당장 글을 쓰지 않아도 될 충분한 핑계가 되어줬다. 아이를 재우고 10시부터 길게는 새벽까지 자기 계발과 발전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일회용 콘텐츠’에 시간을 써버렸다
어쩌다 마음먹는 날도 있었다. 동네 강좌를 듣거나, 야트막한 산에 올라 다이어트에 대한 갈망을 하루쯤 해소한다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때에는 그나마 뭔가가 되어가는 것 같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돈을 왕창 벌고 싶은 걸까.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살 수 있을까. 원하는 글은 써질까. 행복은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이 모든 것이 참 궁금한데, 일단 돈을 왕창 버는 일은 현재로선 길이 보이지 않으니, 그 이후를 상상하는 것도 썩 와닿지 않는 일이다.
흔히들 불혹이라는 마흔인데, 여전히 흔들린다. 한 때 나영석 피디가 승승장구하는 것이 못마땅해(정확히 말하면 나영석 사단의 이우정 작가의 드라마 데뷔 성공하는 것을 보고, 아니 어쩜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대중의 마음을 샅샅이 뒤집어 파는 천재적인 감성을 감탄하며) TV에 나오는 그들의 작품 시청을 보이콧했다(결국 응팔 시리즈는 다시 보기로 몇 번이나 봤지만).
열려야 한다. 좁쌀보다 못한 내 마음을 인정하고, 잘된 것을 하나하나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목표를 세우고, 한 발 한발 나서야 한다, 는 진부한 결론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오늘 아이는 처음으로 독후감 공모전에 자기글을 써냈다. 공식적인 첫 출품작. 글쓰기를 겁내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글자 한글자 쓰는 걸 보며
다시 배운다. 비우고 다시 나를 닦고, 때론 조이고 기름칠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