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바람 목록을 찾아서
"나, 가을 타는 거 같아."
"응... 넌 모든 계절을 다 타잖아."
나는 계절 민감도가 높다. 바람의 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손등, 귓불, 복숭아 뼈에 바람이 닿자마자, 코끝과 뇌가 반응한다. '바람 목록' 같은 게 내 몸이 있나 보다. 레퍼런스를 찾는 것처럼, 오늘 같은 바람 냄새를 맡았던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특히 가을 목록은 두툼해서 시시각각 마음을 간질인다.
아침 기온이 8도 남짓한 오늘 같은 날엔, 밴쿠버 버라드 스트릿에 홀로 서 있던 그날이 떠오르고, 한낮의 기온이 17-18도로 오르면 산후조리사 이모에게 둘째 '꽁이'를 맡기고 첫째 '쑥쑥이'를 마중 나가던 홀가분한 그날이 스쳐 지나간다. 민둥산 억새밭의 황금물결과 홍천 은행나무 숲의 기억도 딱 지금이다. 호주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그날도 가을바람이 배경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몸이 먼저 안다. 그중에서 단연 1등은 '코'다. 맹맹, 킁킁한 상태의 코는 경쟁하듯 앞서 '환절기'를 맞이한다. 샤워 욕조 수전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제 샤워할 때보다 물 온도가 낮게 느껴지는 건 가을이 왔다는 신호다. 파란색에서 빨간색 방향으로 머리를 틀 수록 겨울은 가까워 온다. 한낮에도 창틀에 겨울 걸쳐 있던 해가 이젠 거실 깊숙이 파고든다. 오래도록 머물며 집안의 온기를 더하고, 창밖의 초록 잎은 미묘하게 황갈색을 섞어 입고 춤을 춘다.
엄만 계절의 바로미터였다. 늘 씩씩했던 사람이 꼭 이맘때가 되면 갈대 무성한 천변을 걸으며 울적해했다. 다 지우기 어려운 '그날'의 기억이 온몸의 세포 곳곳에 남아있고, 바람 냄새가 시계 알람처럼 세포를 깨우는 거다. 엄마의 바람 목록에 따스함을 채울 수 있게 올 가을엔 함께 여행해야지.
이젠 '가족'이란 책갈피가 목록 사이사이 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