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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Oct 31. 2023

아빠 택시

아쉽지만 그때까지만

 난 요즘 택시 기사이다. 자전거를 운전한다. 우리 아이 전용이다. 택시비는 안 받는다. 평일만 영업한다.


 이사 가고 아이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졌다. 걸어가면 30분이 걸렸다. 버스 타면 10분이 걸렸다. 애매한 거리였다. 난 버스를 선택했다. 당연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자전거를 추천했다.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라고 했다. 그게 더 편하지 않냐고 했다. 난 생각지도 못 한 방법이었다. 내게 자전거는 불편했다. 버스 타는 게 더 편리했다. 난 버스를 고집했다.


 버스는 힘들지 않다. 타고 내리기만 하면 된다. 버스 타고 가는 동안 다른 걸 할 수 있다. 멍 때릴 수 있다. 버스는 기다려야 한다. 내가 일찍 나와도 버스가 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버스가 내 지각 여부를 결정한다. 그 선택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버스비가 인상됐다. 둘이 왕복 2번 하는 날은 하루 만원 가까이 든다.


 자전거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간다. 소요시간이 일정하다. 일찍 나오면 일찍 도착한다. 내가 지각 여부를 결정한다. 초기 비용이 든다. 3 달이면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가는 동안 페달을 끊임없이 돌려야 한다. 주변 상황을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사고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잘 못 하면 크게 다친다.


 비교할수록 자전거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동안 버스가 제시간에 안 올 때가 많았다. 늘 기다리기 일쑤였다. 일찍 나오는 게 무의미했다. 지각하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아이와 전력 질주했다. 경제성을 따져도 자전거가 훨씬 위였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버텼다. 계속 버스를 탔다.


 내 MBIT는 INFJ이다. 기질검사에서는 자극추구 2점, 위험회피 100점이 나왔다. 시작이 힘든 사람이었다. 변화에 대한 불안이 컸다. 뭘 새롭게 할 때 안 되는 이유만 찾았다. 사람이 쉽게 안 변했다. 결정을 뒤로 미뤘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었다.


 자전거로 등하교하는 엄마를 종종 봤었다. 그전에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떤 자전거를 타는지 눈여겨봤다. 자전거 브랜드와 모델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하교 길 아이가 내게 말했다.


“버스 타기 힘들어.”


 난 자전거를 당장 사기로 결정했다.


 아이 말이 방아쇠가 됐다. 선택의 탄을 쐈다. 그동안 내가 우유부단했다. 버스 타느라 고생한 아이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결정을 도와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거침없이 진행했다. 평소였으면 검색하는데 며칠 걸렸을 것이다. 결재하는데 또 며칠 지났을 것이다. 이번에는 미루면 안 됐다. 기회가 왔을 때 해야 했다. 그날로 가게에 가서 자전거를 샀다. 마음먹고 하니 금방이었다. 이미 자전거 브랜드와 모델은 볼 데로 봐서 고르기 쉬웠다.


 난 자전거를 늘 혼자 타왔다. 누군가를 태워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처음이었다. 아이를 뒤에 앉히고 가봤다. 아이지만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 무게는 자전거를 좌우로 강력하게 흔들었다. 몇 번이고 쓰러졌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혔다. 다행히 너그럽게 용서해 주셨다. 더 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갔다.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힘든 하루였다.


 자전거 타는 것이 부담됐다. 괜히 샀나 싶었다. 넘어질까 두려웠다. 충돌할까 불안했다. 난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도 가르친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창피했다.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아이에게 내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공원에서 아이를 뒤에 태우고 연습했다. 장애물이 없거나 오르막길이 아니면 잘 탔다. 난 자전거 타는 실력이 있었다. 누군가를 태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적응할 때까지 계속 타는 도리밖에 없었다. 내 능력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가급적 넓은 길과 평지로 가야 했다. 지도앱으로 등하교 코스를 면밀히 탐색했다. 실제로 다니면서 코스를 보완해 갔다. 결국 최적의 코스를 찾았다. 그 길은 편안하고 안전했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기에 좋았다.


 이 동네는 오르막길이 많았다. 급경사를 만나면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었다. 호기 부리지 않았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갔다. 내 자전거는 그 정도로 성능이 좋지 않았다. 내 다리 힘도 부족했다. 현실을 직시했다. 무리해서 오르다 누군가 다칠 것이다. 아이와 안전하게 타고 다니는 게 우선이었다. 경주가 목적이 아니었다.


 반복해서 타니 몸이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 두렵지 않았다. 감각이 발달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매일 자연스럽게 자전거로 등하교했다. 여전히 안전하게 탔다. 잊지 않고 늘 조심히 다녔다. 내 택시에는 VVIP가 타기 때문이었다.


 아이 덕분이었다. 육아 휴직 덕분이었다. 아이와 등하교를 함께한 덕분이었다. 이 덕 아니면 귀한 경험을 못했을 것이다. 아빠 택시가 영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하루 두 번 특별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듬직한 아빠 등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로 인해 내 삶이 새로워진다. 내 연대기에 없었던 것이 채워진다. 막힌 사고가 열린다. 낡은 습관에서 벗어난다. 권태에서 긴장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이 순간을 아이와 함께 한다.


 아이도 신선한 체험을 한다.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 된다. 나중에 못한다는 의심이 없다. 여기서 더 날개 필 일만 있다. 더 참신해진다. 더 예리해진다. 한계가 없다. 다른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변한다. 우리 삶이 같이 동적으로 된다. 무미 건조해지지 않는다. 서로가 필요 충분 관계가 된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늘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내 손을 떠나기 전까지만 그랬으면 한다. 아쉽지만 그때까지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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