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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Nov 06. 2023

사실 나도 잘 못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아이는 아이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행동이 보인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들린다. 그제야 이해가 된다.


 난 노화가 시작됐다. 흰머리가 났다. 피부가 푸석푸석해졌다. 체력이 떨어졌다. 회복이 더뎠다. 무엇보다 어릴 때 기억이 점차 나지 않았다. 그때 정서를 잊어버렸다. 아이를 아이로 보는 게 잘 안 됐다. 참고할 만한 근거가 없어졌다.


 어른 시야로 아이를 살폈다. 내 사고는 편협해졌다. 아이를 좁게 봤다. 어떤 때는 아이가 더 넓게 생각했다. 순수했다. 아이는 편견이 없었다.


 난 아이에게 욕심 없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안 그랬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답답했다. 한숨이 나왔다. 목소리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바람이 커질수록 무리수를 뒀다.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최선의 선택만 하기를 바랐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잘 못한다. 나도 하루에 수십 번 실수했다.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때도 많았다. 게으를 때도 있었다. 작심삼일도 많았다. 때로는 비도덕적인 사람도 됐다. 속물일 때도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아이가 수학을 잘했으면 했다. 받아쓰기할 때도 그랬다. 줄넘기를 할 때도 그랬다. 아이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아이가 친구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 나눠 먹으려고 간식을 챙겨갔다. 기쁜 마음으로 가져갔다. 어떤 친구 혼자 여러 개를 먹었다. 누군지 확실하지 않았다. 간식 주인인 아이는 정작 1개밖에 못 먹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말 못 했다. 집에 와서 속상해했다. 본인이 조금밖에 못 먹은 이유도 있었다. 모든 친구들에게 다 나눠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그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느 친구가 우리 아이 의사를 묻지 않고 먼저 행동했다. 아이는 그게 싫었다. 그 친구는 악의는 없었다. 기질이 원래 그런 친구였다. 친구들 사이에 1명은 있을 법한 친구였다. 아이는 또 말을 못 했다. 속알이 했다. 나중에서야 우리에게 말해줬다.


 아이에게 아쉬움이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 잘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못했다. 속상해서 괜히 잔소리했다.


 아이에게 설교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얼마나 잘해왔나?’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해왔나?’ ‘늘 당당했었나?’ ‘위축되지 않았었나?’ 안 그랬다. 나도 못했다. 살면서 후회가 많았다. 과거 아쉬움이 생각나면 이불을 발로 많이 찼다. 잠 못 이루기도 했다.


 나도 못하는데 아이에게는 하라고 했다. 안 쉬운 일인데 아이에게는 쉽게 이야기했다. 내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아이에게 잘 못 했다. 아이가 내 실체를 알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이미 알지도 모른다. 못난 아빠였다.


 아이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 심증만 있었지 물증은 없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관계가 악화될 두려움도 있었다. 친구가 된 지 몇 달 안 됐다. 서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그래서 말을 못 했다. 듣고 보니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나도 아무 말 못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한이 남았을 것이다. 속상했을 것이다. 나도 인관관계가 늘 어려웠다. 정답 없는 숙제였다. 미해결 과제가 아직 많이 쌓여있었다.


 우선 아이 마음을 위로했다. 아이가 잘 못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잔소리한 것도 사과했다.


 셋이서 함께 고민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이야기했다. 각자 의견을 냈다. 종합하여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는 정한 대로 해보기로 했다. 우리 아이는 잘할 것이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한 번에 잘 되지 않는다. 조금씩 잘한다. 못할 때도 있다. 다시 셋이서 이야기하면 힘을 얻어 간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한다. 다시 잘한다. 역전드라마를 찍는다.


 이렇게 우리에게 계속 말해주면 좋겠다. 아쉬워도 잔말 안 할 거다. 무리한 기대도 안 할 거다. 우선 듣는다. 함께 이야기한다. 아이 마음을 먼저 풀리게 한다.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 내 인간관계에도 도전한다. 나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토론한 대로 시도해 본다. 난 안 하면서 아이에게만 하라고는 못한다. 나도 해본다. 그래야지 아이에게도 할 말이 있다.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목소리에 힘이 있다. 내 실패도 말한다. 수정하고 다시 뛰어든다. 셋이 함께 생각한다. 집단 지성이다. 결국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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