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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Nov 16. 2023

일류 아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자.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서 한 걸로 기억한다. 멋진 말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 아이는 일류다.


 아침부터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비가 오다 안 오다 반복했다. 다시 안 볼 것처럼 비가 내리다가도 맑아졌다. 다 날려버릴 기세로 바람이 불다가도 잠잠해졌다. 아이 등교 길 우리는 신발이 다 젖었다. 옷도 축축해졌다. 찝찝하고 불쾌했다. 난 이 느낌이 매우 싫었다. 비만 오면 몹시 예민해졌다.


 아이 등교 후 비가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했다. 세탁기에 가득 쌓인 빨래가 생각났다. 서둘러 집에 와서 빨래를 했다. 세탁기가 한참 돌고 있을 때 다시 비가 내렸다. 이 날씨로 빨래가 잘 마를 리가 없다. 허탈했다. 내일 할 걸 후회했다.


 아이와 하교  하늘이 다시 장난쳤다. 강한 폭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졌다. 오전보다 심했다. 힘들게 집에 왔다. 모든 것이 젖었다. 물먹은 솜처럼 축 쳐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말했다.


 “콧물이 나오고 목이 아파.”


 아이는 콧물이 줄줄 나오고 있었다. 감기가 단단히 걸렸다. 아침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괜찮았다. 초기 감기에는 빨리 병원을 갔다 오는 게 상책이었다. 병원 예약 앱을 켰다. 오늘은 오픈런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날씨 탓인지 예약 인원이 적었다. 순번도 빠르게 왔다. 그전에는 기본이 1시간 대기였다. 노쇼로 예약이 최소 될까 봐 마음이 급했다.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을 나왔다. 쉴 틈 없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 코와 목이 많이 부었다고 하셨다. 독감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오늘 밤 잘 지켜보라고 하셨다. 아이는 올봄 독감으로 고생했다. 그것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이 화가 많이 났다. 오늘 중 가장 강력한 비바람이 불었다. 무거운 철제 시설물이 픽픽 쓰러졌다. 우리는 우산을 방패 삼아 천천히 걸어갔다. 우리를 지켜주는 건 편의점 비닐우산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못 나갔다. 강력한 맞바람이 가는 길을 막았다. 빗물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흘렀다. 우산은 비가 아닌 바람만 간신히 막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반대로 불었다. 우산이 뒤집어졌다. 금속 뼈대가 저항 한번 못하고 부러졌다. 버려야 했다. 유일한 방어막이 사라졌다. 비바람을 맞으며 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인내의 끈이 곧 끊어지려고 했다. 내 입에서 분노가 막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그때 아이는 깔깔깔 웃었다. 난 아이 반응에 멍해졌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덕분에 아이 앞에서 욕은 안 했다. 다행이었다.


 아이는 고장 난 우산을 보고 크게 웃었다. 비를 온몸으로 맞는 것도 즐거워했다. 오늘 가장 크게 웃었다. 해맑았다. 자유로웠다.


 나랑 많이 달랐다. 난 계속 비에 젖어 예민했다. 안 되는 일이 많아 힘이 빠졌다. 아이는 매 순간 나와 함께 있었다. 아이는 그럼에도 웃었다. 난 울 뻔했다.


 “난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난 지키려는 게 많았다. 오늘 아이 스케줄을 지켜야 했다. 내 옷과 신발도 지켜야 했다. 못 지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못 지키니 스트레스받았다.

계속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당황했다.


 아이도 똑같이 알았다. 아이도 지키려고 했다. 나중에 하려고 했다. 지금 꼭 안 해도 되는 것을 알았다. 현재 재밌는 상황을 즐겼다. 재밌으니 웃었다. 웃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는 힘들어도 웃었다. 아이는 일류였다.


 나도 아이처럼 여유가 있어야겠다. 천진난만해져야겠다. 진지함에 깊이 빠지지 말아야겠다. 나중에 해도 될 건 뒤로 미뤄야겠다. 현재 즐거우면 즐기자. 나중은 안 온다. 지금 웃기면 참지 말고 웃자. 힘든 일이 있어도 깔깔깔 웃자. 나도 아이처럼 일류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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