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에 아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등교할 때는 괜찮았다. 감기는 항상 갑자기 찾아왔다.
아이가 감기 증상이 있을 때마다 고민한다. ‘병원에 가야 될까? 말아야 될까?’ 망설이는 이유가 있다. 동네 병원 가기가 쉽지 않다.
사는 곳이 학교가 많다.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가는 사람이 많다. 그 인원을 감당할 만큼 병원 수가 적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줄었다. 아이 단골 병원에는 사람이 늘 많다.
환절기가 되면 병원 가기 더 힘들다. 병원 오픈 후 금방 예약 마감이 되기도 한다. 그때는 진료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 예약 성공해도 1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보통 증세가 심해진다. 결국 이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집에서 쉬었다. 병원 문 닫는 시간이 거의 다 됐다. 감기 기운이 경미하기도 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이 이마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방과 후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목감기 약만 처방해 주셨다.
아이는 밤부터 고열이 시작됐다.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잘 내려가지 않았다. 물수건으로 열심히 닦아주었다. 심상치 않았다. 감기 이상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증상이었다. 5월에도 그랬다.
어린이날이 금요일이었다. 주말까지 하면 황금연휴였다. 아이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전 아이는 절망했다. 독감 확진 판정을 받았다. 휴일 내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어린이로서 마땅히 누릴 특권을 즐기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 이번에도 독감이었다. 나쁜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다. 치료를 위해 수액을 맞았다. 아이가 당황할까 봐 미리 설명해 줬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씩씩하게 잘 받았다. 5월에 해봐서 그런지 담담히 받아들였다. 수액 맞는 모습을 사진 찍어 달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그 사진을 보냈다. 아내는 주사를 무서워했다. 아이는 엄마보다 주사 더 잘 맞는다고 자랑했다. 독감 걸려 아프다고 어리광도 부렸다.
수액 맞고 나니 아이는 점차 좋아졌다. 아까까지 고열로 축 쳐져 있었다. 거친 숨을 쉬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목이 아파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총기 잃은 눈으로 누워만 있었다.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아이는 열이 내려가니 방방 뛰었다. 배고프다고 했다. 재잘재잘 말도 잘했다. 듣기 좋은 소리였다. 집안이 다시 살아났다.
아이는 이후에도 한동안 미열이 있었다. 몸 안에서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지금 밖에 나가면 역전패가 예상됐다. 완승할 때까지 집에서 기다렸다. 아이 원성이 자자했다. 티브이 보는 것으로 겨우 잠재웠다. 평소에 티브이를 못 봐서 그런지 잘 먹혔다. 그나마 티브이를 볼 때는 누워 있었다. 안 그러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먹고 자고 쉬게 하고 싶었다. 아플 때 누리는 소박한 호사였다.
아이는 며칠 뒤 완전히 회복했다. 빠른 쾌차가 감사했다. 아이는 좋지만은 않았다. 내일부터 학교 가야 했다. 독감이 준 고통을 금방 잊었다. 학교가 독감보다 셌다.
아이가 아프니 아이가 멈췄다. 부모도 멈췄다. 집 안시간도 멈췄다. 수많은 생각들이 불필요해졌다. 오직 한 가지만 중요했다. 아이가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죽 한 숟가락 넘기는 작은 움직임이 간절해졌다. 과자나 젤리라도 먹었으면 했다. 체온계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아이 기침 소리가 내 마음을 때렸다. 편안하게 잤으면 했다. 일어났을 때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했다.
다 나으면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 놓으라고 했다. 가고 싶은 곳도 가자고 했다. 다 이루었다. 아이와 함께 먹고 노는 일이 감사했다.
독감, 코로나에 이어 폐렴 유행 소식이 들렸다. 아이가 다시 멈추지 않도록 마스크를 씌웠다. 손을 깨끗이 씻게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