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사람

난 여전히 조용히 산다.

by 빈들

점심시간 한 동료가 눈에 띈다. 그는 완벽한 외향형이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말할수록 기분이 업된다. 주변에 에너지를 나눠 준다. 사람들도 즐거워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도 이어진다. 남은 점심시간도 사람들로 채운다.

난 오롯하게 내향형이다. 그와 반대다. 주로 듣는다. 맞장구친다. 내 이야기는 가끔 한다. 입은 멈춰 있다. 머릿속은 분주하다. 적절한 단어를 찾는다. 완벽한 문장을 만든다. 분위기 맞추느라 정신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모된다. 텐션이 떨어진다. 웃음이 사라진다. 자리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

이런 내가 싫었다. 활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웃었으면 했다. 외향인이 되려 했다. 그러다 가랑이가 찢어졌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내게 맞지 않은 옷이었다. 금방 그만뒀다.

난 사람 만나면 에너지를 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렇게 태어났다. 안 바뀌는 영역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힘이 빠졌다. 말수가 적어졌다. 눈에 띄지 않게 됐다. 존재감이 없어졌다. 집에 갈 때면 아쉬웠다.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주목받는 것을 능력의 기준으로 봤다. 스스로 한참 떨어진다고 여겼다. 문제가 있다고 봤다.

날 있는 그대로 보는데 시간이 걸렸다. 난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세상엔 다양한 존재가 있었다. 모두 달랐다. 난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 혼자서 벽을 세웠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어 스스로 창조했다. 그 장벽은 누구도 넘을 수 없었다. 높고 높았다. 못 넘어서 자책했다. 사실 실체가 없었다. 굳이 넘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무너뜨려야 했다.

날 들여다보고 알아갔다.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연구했다. 이해 안 되는 면도 있었다. 생긴 대로 받아들였다. 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았다. 하고 싶으면 했다. 안 하고 싶으면 안 했다. 나에게 맞게 조절했다. 조종 방법은 나밖에 몰랐다. 내 손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지치면 멈췄다. 입을 닫고 잠시 쉬었다. 충전되면 다시 말했다. 억지로 버티지 않았다. 안 되겠으면 벗어났다. 인사는 꼭 하고 갔다. 그 자리를 고수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에 또 만나면 됐다. 내 에너지 양을 잘 살폈다. 얼마나 남았는지 계속 체크했다. 남은 양에 따라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내가 선택했다.

활발함이 능사는 아니었다. 상대방을 잘 받아 주는지가 중요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지치게 했다. 안 듣고 내 말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됐다. 무례하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외향인지 내향인지는 상관없었다. 기질이 결정하지 않았다.

난 더 듣기로 했다. 더 반응하기로 했다. 더 예쁜 말 하기로 했다. 내가 잘하는 걸 더 했다. 다행히 사람들과 잘 지냈다. 말수는 여전히 적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들이 내게 속 이야기를 꺼냈다. 나한테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분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난 사람이 늘 궁금했다. 들으면 그 사람을 알게 됐다. 각자 스토리는 늘 흥미로웠다. 알고 나면 그분이 이해됐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만족스러웠다.

난 여전히 조용히 산다. 이야기보따리는 외향인에게 맡긴다. 그 대신 잘 듣고 호응한다. 공감과 격려를 한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한다. 나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 모두 행복한 점심 식사를 한다. 난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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