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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n 19. 2024

어두운 밤 야구장 주차장, 그 선수를 부른 단 한 명

기억에 남은 장면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얼마 전 혼자 잠실야구장에 직관 간 날이었다.


경기는 이겼고 밤공기가 선선해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야구장 건물 내리막을 따라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외벽을 따라 모여있었다. 외벽의 높이는 성인 허리쯤이었는데, 다들 빈틈없이 몸을 기대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가 까치발을 들고 살펴보니, 외벽 아래로는 선수단 버스가 있는 야외주차장이 있었다. 그곳엔 더 많은 사람들이 유니폼과 야구공, 사인펜을 들고 서 있었다. 퇴근길 선수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팬들은 야구장 건물 출입구에서 누군가 나올 때마다 파이팅! 사인해주세요! 같은 말들을 외쳤다. 어두운 밤이라 선수들을 멀리서 한눈에 알아보긴 쉽지 않아 팬들도 서로 긴가민가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 어떤 확실한 환호성이 터졌다. 상대팀 키움 히어로즈의 외국인 타자 로니 도슨 선수가 나와 기다리던 팬들한테 인사를 했다. 쾌활하고 다정하게 웃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본 키움히어로즈 로니 도슨 선수. 사진 바깥에선 양 팀의 많은 팬들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LG트윈스 팬들도 곧 나올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바로 원정 경기가 있었는데, 주변에 있던 팬들은 선수들이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할 테니 아마 몇 분 안에 한꺼번에 나올 거라며 서로 의견을 공유했다. 응원하는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기분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집까지 혼자 갈 길이 멀기에 난 이만 가보기로 했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어김없이 찾아온 모기의 공격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그때 내 바로 옆으로 어떤 여성분이 다급하게 걸어오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ㅇㅇ아, ㅇㅇ아!


시선이 향하는 곳은 주차장 한복판. 한 청년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는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양 팀의 많은 팬들이 있었지만 모두의 시선은 그가 아닌 출입구 쪽을 향해있었다. 그때, 내 옆에 선 분은 다시 이렇게 외쳤다.


ㅇㅇ아, 엄마야. 엄마 여기에 있어!


그제야 청년이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곤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팬이 선수인지 묻자 그분은 맞다며 그 선수, 그러니까 아들의 이름을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행복한 미소였다. 이름을 듣고 찾아보니 그날 처음 1군에 콜업됐던 LG트윈스 신인이었다. LG 팬인데도 내 바로 옆에선 그분, 그러니까 선수의 어머니가 이름을 부를 때도 난 몰랐던 거다. 아직 갈 길이 먼 초보 팬인 게 아쉬웠다. 응원이라도 크게 외치고 올 걸.


그리고 며칠 뒤, 집에서 경기를 보는데 그 선수가 안타를 쳤다. 1군에서의 첫 안타였다. 어두운 밤, 야구장 주차장에서 각자 좋아하는 선수를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 사이 아들의 이름을 환하게 부르던 그분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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