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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n 10. 2024

야구를 보다가 문득,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일상에 생긴 묘한 안정감


6월에 이틀 연속 혼자 야구장엘 다녀왔다. 혼자 밥 먹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고 영화도, 여행도 혼자 잘 즐기는 편이지만 야구장까지 혼자 갈 줄은 몰랐다. 쉬는 날 남편 출장으로 첫 시도해 본 혼-직관이 좋아 다음날 경기까지 취소표를 잡았더랬다.



처음엔 좀 걱정도 했다. 무엇보다 말동무가 없어 허전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남편이랑 같이 갔을 때보단 덜 신났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웠다. 생각보다 혼자 앉은 사람들이 많았고 3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경기를 보다 보니 구석구석 여러 장면을 살펴볼 수 있기도 했다. 모두가 선발투수가 던지는 공을 볼 때 외야수 한 명을 찍어 움직임을 관찰해 본다거나 타석에 오르기 전에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푸는 타자들을 지켜보는 식이었다. 삼진 당하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선수의 발걸음, 반대편에 앉아있는 응원팀의 모습도 평소보다 더 자주 눈에 들어왔다.


혼자 가보니 더 분명해졌다. 내가 정말 야구를 좋아하게 됐구나. 집에서 잠실까지 오가는 왕복 3시간의 시간도, 지든 이기든 현장에서 경기를 본 그 3시간의 시간도 아깝지 않았다. 야구가 좋아진 여러 이유 중 막연하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어떤 한 가지도 하나의 문장으로 선명해졌다.


야구를 보다가 문득 열심히 살고 싶어지곤 했다.



저녁에 야구 보면 된다는 마음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7년 차가 됐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고 간절하게 준비해 입사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다만 햇수가 쌓일수록 힘든 점도 많아지고 고민이 커진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뒤따를 때가 많다. 매일 결과가 드러나는 업무 특성상 스스로 투자한 시간과 고민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과 자주 비교하고 자책한다. 매일 어려운 퍼즐을 맞춰야 하는데 다음 날이 되면 새로운 퍼즐이 던져지는 기분이다. 끊임없이 만들고, 맞추고, 어긋나고, 실패하고, 다시 하고. 가끔 만족스럽게 맞춰진 퍼즐이 있으면 그 기분으로 좀 뿌듯해하다가 다시 반복하는 그런 일상이다.


퇴근해도 머릿속에 상념이 많이 남는다. 오늘의 아쉬움이나 내일에 대한 이른 걱정 같은 것들이 떠다닌다. 이건 입사 직후부터 늘 그랬고 아마 일을 관두지 않는 한 계속 그럴 테다.



그럴 때 야구를 보면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좋았다. 규칙도 팀도 모르고 전혀 관심 없던 이 분야에 빠르게 빠져든 건 어쩌면 그 이유가 가장 컸을 것 같다. 아홉 번 공수를 반복하다 보면 3시간이 금방 가있고 그럼 어느새 늦은 밤이다. 2대 7로 지다가도 8대 7로 이기는 게 야구다 보니 이보다 짜릿한 도피처가 없다. 물론 작년에 LG가 워낙 잘했던 탓도 있겠다. 많이 있겠다.


그리고 좀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야구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종종 그랬다. 퇴근 후엔 야구를 보면서 머리를 비울 있으니까 일할 때 좀 더 집중해 보잔 마음이 들었다. 주말에 야구장 가면 되니까 평일에 힘낼 있겠단 마음도 생겼다. 신기하다. 이기든 지든 대패하든 어쨌든 거의 매일 하니까 나는 일상을 살고, 그 이외의 시간에 이 취미를 즐기면 된다는 게 묘한 안정감을 줬다.


어떤 분야에서든, 어떤 일이든

올해는 특히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면 매일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약속이 있어도 뒤늦게나마 주요 장면은 꼭 보고 잤다. 개막한 지 아직 석 달도 안 됐는데 직관도 어느덧 열세 번을 갔다. 쉬는 날이면 잠실 가는 게 제일 좋았다. 원정도 가기 시작했다. 야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팬이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잘 따라가고 있다. 이젠 경기인상 깊은 장면은 찾아서 본다.



전력을 다해 던지고, 치고, 잡고, 달리는 게 좋다. 기억 남는 순간이 점점 쌓인다. 진짜 사력을 다하는구나, 싶은 모습들. 멋있다. 그리고 일종의 자극이 된다. 어떤 분야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멋진데,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생각을 야구를 보면서 다시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겠구나 하면서. 처음 1군에 올라와 첫 타석에 오른 신인의 간절함을 보는 것도 좋고, 마흔둘 베테랑이 이적한 팀에서 첫 홈런을 치는 순간도 좋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선수들이 잘하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기분이 신기하다. 다행히(?) 주6일 하니까 지면 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계속 지면 연패가 끝날 날을 생각하면서 또 본다.  


결국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을 줄 알고 시작한 야구를 온갖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다.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됐으니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어쨌든 올해 하반기도 내 할 일은 잘 해보고, 야구도 야구대로 열심히 보고 그렇게 적당히 괜찮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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