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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n 02. 2024

세 번의 방출, 모든 구단에 전화를 돌렸다

LG 김진성을 향한 이유 있는 지지



야구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팬들은 열광한다. 최고다, 고맙다, 덕분이다, 고생했다 같은 말로 화답한다. SNS에 올라오는 스코어 게시글엔 이른바 '주접' 댓글도 쏟아진다. 창의적인 '주접력'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선수에겐 팬들의 반응이 어딘가 좀 다르다. 조금 더 애틋해하고, 미안해하고, 무엇보다 마음 아파한다. 경기에서 잘했든 아쉬웠든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야구팬들은 일희일비가 일상이라지만 이 선수에게만은 일관된 응원을 보낸다. LG트윈스 투수 김진성 선수 얘기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방출, 모든 구단에 전화를 돌렸다

김진성 선수는 1985년생, 올해로 만 서른아홉이다. 2004년에 프로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20년 차가 넘었는데 그만큼 이력도 단순치 않다. SK 와이번스로 시작해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NC 다이노스를 거쳐 2022년 LG트윈스에 합류했다.


LG에 오기 전까지 김진성 선수는 세 번의 방출을 경험했다. 만 서른여섯 살, 2021년엔 10년 넘게 몸 담으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던 NC에서 방출됐다. 김진성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야구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9개 구단에 전부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자존감은 계속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전화한 게 LG트윈스였다고 한다. LG 차명석 단장은 그런 그에게 "김진성에게 무슨 테스트가 필요하냐"라고 답했고, 그렇게 김진성 선수를 영입했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김진성 선수는 연봉 1억 원에 LG트윈스와 계약했다. 경력과 능력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그는 그저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3년 시즌, 총 80경기에 출전하며 역대 오른손 투수 중 1위 기록을 세웠다. 평균자책점은 2.18.  진통제를 먹어가며 경기에 나왔다. 그렇게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29년 만에 LG트윈스가 통합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중심에 김진성 선수가 있었고 LG 팬들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이름이 됐다.


2024년 5월, 평균자책점 0

올 시즌도 김진성 선수는 묵묵히 온 힘을 다하고 있다. 팀의 위기 상황이면 김진성 선수가 올라오고 존재만으로 팬들은 든든해한다.


성적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김진성 선수는 5월 한 달 동안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10경기 이상 출전한 모든 구단 불펜 투수들 중 유일한 성적이다. 무사만루 상황에 등판한 5월 18일 KT전에서도 한 개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매일 자신의 피칭을 촬영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5월 31일 두산과의 경기 직관 때 김진성 선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6회 1사 1, 2루 위기 상황에서 다섯 타자 연속 범타(*타자가 친 공이 수비에 잡혀 아웃 처리)시키며 LG의 승리를 지켰다. 김진성 선수가 내려올 때 모든 팬들이 이름을 외쳤다. 김진성 선수는 이번에도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모습마저 김진성 선수답다.


김진성의 활약을 다룬 기사들


팀을 위한 '하루살이 피칭'

요즘 LG 팬들은 김진성 선수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항상 진중한 표정으로 말 수도 많지 않은데, 그런 선수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꺼내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점차 상황에서 올라와 호투를 보여준 5월 23일 인터뷰에선 선수로서 생명이 얼마 안 남아 하루살이처럼 피칭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없고 팀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팬들은 김진성 선수에게 환호하면서도 왜 이렇게 늘 미안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야구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일종의 존경심, 그리고 어딘가 짠한 마음이 든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11회까지 연장한 끝에 승리한 6월 1일 두산전에선 김진성 선수가 실점을 허용하며 두산이 중간에 역전했었다. 결승 홈런을 때린 김현수 선수에게 김진성 선수는 고마워 라고 했다. 경기 후 투수 최동환 선수는 김진성 선수가 계속 힘들고 중요한 상황에서 올라가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야구는 이제 겨우 3분의 1을 지났다. 늘 완벽할 순 없다. 실점도 생기고 역전도 허용하고 홈런도 맞을 테다. 그래도 많은 팬들은 김진성 선수를 묵묵히 응원할 것이고 그 이유는 이미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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