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원 Jun 03. 2024

매일 3시간, 주6일 일희일비

야구가 바꿔놓은 일상


야구를 챙겨본 지 이제 만 1년이 됐다. 2023년 6월부터 시작했는데, 야구가 없던 11월 중순부터 3월 중순을 제외하면 고작 8개월 정도 야구를 본 셈이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경기를 보면서 생소한 용어와 규칙을 검색한다. 예전엔 읽지 않던 스포츠 뉴스를 정독한다. 단 한 번도 틀어본 적 없던 스포츠 채널을 내가 다니는 회사 채널만큼 많이 튼다.


야구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주 6일? 3시간? 그걸 매일 본다고?"

야구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놀란 건 주 6일 스포츠란 거였다. 전혀 몰랐다. 중계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관심 없던 분야였으니 기본적인 지식이 전무했다. 막연하게 스포츠 경기는 일주일에 하루만 해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매일 3시간을 한단다. 야구는 축구의 90분 규정 등과 달리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평균적으로 3시간은 한다. KBO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이번 시즌 평균 경기시간은 지금까지 3시간 9분이다.

연도별 평균 시간을 봐도 전부 3시간이 넘는다. 정규 9이닝 까지 했을 때다. 연장하면 더 길어진다.

일단 기본 3시간은 잡고 봐야 한다는 거다.

자료 출처: KBO 홈페이지


결국 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여섯 번 경기하는데, 매번 3시간은 한다. 주 18시간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규 리그가 매년 3월에 개막해 10월까지다. 그중 상위 5개 팀은 포스트시즌(*post-season. 정규 시즌 이후 순위를 가리는 단기전)까지 나가 11월까지 야구를 한다. 사실상 거의 1년 내내 야구를 볼 수밖에 없다.


굳어진 루틴

물론 거의 매일 야구를 한다고 그걸 다 봐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팀 경기를 안 보기가 쉽지 않다. 아직 초보자라 그런가 했는데 오래 야구를 봐온 지인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일단 평일은 야구가 시작하는 저녁 6시 30분에 머릿속 시계가 맞춰져 있다. 보통 저녁 7시 안팎에 퇴근하는데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 티빙부터 들어간다. 그럼 한 2~3이닝부턴 쭉 볼 수 있다. 그렇게 끝까지 본다.


주말은 단순하다. 토요일은 오후 5시, 일요일은 2시 시작이니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 먹고 야구 보면 하루가 다 간다. 직관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니 더더욱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중계로 봐도 그렇지만 직관하면 더욱 진이 빠지는데, 일희일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 시즌에 치르는 144경기 중 하루일 뿐인데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연스레 손을 모은다. 종교도 없는데 온갖 기도를 다 하고 있다.


언젠가 직관 때 남편이 찍은 나. 떨어지는 빗방울 맞으며 저때도 뭔가 기도를 하고 있다.

저녁 약속이 있거나 운동하는 날은 끝나고 야구 결과부터 확인한다. 이겼으면 밤늦게라도 하이라이트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호수비, 홈런 같은 중요한 장면은 10초 뒤로가기를 눌러 여러 본다. 수훈선수 인터뷰도 빼먹으안 된다. 다음날엔 엘튜브(LG트윈스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덕아웃 직캠과 선수 인터뷰 영상을 본다. 졌으면 모든 과정은 생략된다. 다음 경기는 다르길 기원하며 기다릴 뿐이다.


이런 일상이 시작 돼버렸는데 과연 출구는 있으려나 싶다.  


야구로 도배된 알고리즘

최근엔 타 팀 경기도 조금씩 챙겨보기 시작했다. 풀 경기를 다 보진 않지만(우리 팀 경기만 보는 데도 하루 24시간의 1/8을 써야 해 시간이 없다) KBO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친절하게도 1~2분짜리로 영상을 편집해 올려두니 찾아보기도 쉽다.

유튜브로 야구만 자꾸 보니까 알고리즘이 계속 야구 콘텐츠만 보여주고 그럼 또 클릭하고 시청하고 무한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다른 팀 선수들도 눈에 익게 되고 그게 또 경기 볼 때 재미를 더한다. 어디서 이적했구나, 저번 경기에서 이랬구나 하는 소소한 배경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곤 매일 순위를 확인한다. 프로야구는 10월까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데 마음이 차분치 못하고 일희일비 그 자체다.

자료 출처: 네이버, KBO

LG트윈스는 4월 초에 6위였다가 6월 2일 기준 리그 2위로 올라섰다. 6위일 땐 4, 5, 7위와 기록 비교를 하고 지금은 1, 3위와의 게임차부터 각 팀의 연승(혹은 연패) 상황까지 쪼르륵 확인한다. 시즌은 길고 아직 몇 경기 만에 손바닥 뒤집히듯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인 걸 아는데도 일단 눈앞에 보이는 순위가 좋으면 기분이 좋다. 이건 내가 초심자여서 그런 걸까 궁금하다.


시간과 애정을 담아

이렇게 일상의 여러 부분을 바꿔놓은 만큼 야구를 보는 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살면서 취미라고 할 만한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껏해야 음악 감상인데 그마저도 애매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시간과 애정을 담아 몰입하는 분야가 오랜 기간 없었는데 이젠 생겨 신기한 기분이 자주 든다.


매일 3시간, 주 6일 일희일비하는 그런 사람이 됐다.


작가의 이전글 세 번의 방출, 모든 구단에 전화를 돌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