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팬들은 열광한다. 최고다, 고맙다, 덕분이다, 고생했다 같은 말로 화답한다. SNS에 올라오는 스코어 게시글엔 이른바 '주접' 댓글도 쏟아진다. 창의적인 '주접력'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선수에겐 팬들의 반응이 어딘가 좀 다르다. 조금 더 애틋해하고, 미안해하고, 무엇보다 마음 아파한다. 경기에서 잘했든 아쉬웠든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야구팬들은 일희일비가 일상이라지만 이 선수에게만은 일관된 응원을 보낸다. LG트윈스 투수 김진성 선수 얘기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방출, 모든 구단에 전화를 돌렸다
김진성 선수는 1985년생, 올해로 만 서른아홉이다. 2004년에 프로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20년 차가 넘었는데 그만큼 이력도 단순치 않다. SK 와이번스로 시작해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NC 다이노스를 거쳐 2022년 LG트윈스에 합류했다.
LG에 오기 전까지 김진성 선수는 세 번의 방출을 경험했다. 만 서른여섯 살, 2021년엔 10년 넘게 몸 담으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던 NC에서 방출됐다. 김진성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야구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9개 구단에 전부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자존감은 계속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전화한 게 LG트윈스였다고 한다. LG 차명석 단장은 그런 그에게 "김진성에게 무슨 테스트가 필요하냐"라고 답했고, 그렇게 김진성 선수를 영입했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김진성 선수는 연봉 1억 원에 LG트윈스와 계약했다. 경력과 능력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그는 그저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3년 시즌, 총 80경기에 출전하며 역대 오른손 투수 중 1위 기록을 세웠다. 평균자책점은 2.18. 진통제를 먹어가며 경기에 나왔다. 그렇게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29년 만에 LG트윈스가 통합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중심에 김진성 선수가 있었고 LG 팬들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이름이 됐다.
2024년 5월, 평균자책점 0
올 시즌도 김진성 선수는 묵묵히 온 힘을 다하고 있다. 팀의 위기 상황이면 김진성 선수가 올라오고 존재만으로 팬들은 든든해한다.
성적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김진성 선수는 5월 한 달 동안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10경기 이상 출전한 모든 구단 불펜 투수들 중 유일한 성적이다. 무사만루 상황에 등판한 5월 18일 KT전에서도 한 개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매일 자신의 피칭을 촬영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5월 31일 두산과의 경기 직관 때 김진성 선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6회 1사 1, 2루 위기 상황에서 다섯 타자 연속 범타(*타자가 친 공이 수비에 잡혀 아웃 처리)시키며 LG의 승리를 지켰다. 김진성 선수가 내려올 때 모든 팬들이 이름을 외쳤다. 김진성 선수는 이번에도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모습마저 김진성 선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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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위한 '하루살이 피칭'
요즘 LG 팬들은 김진성 선수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항상 진중한 표정으로 말 수도 많지 않은데, 그런 선수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꺼내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점차 상황에서 올라와 호투를 보여준 5월 23일 인터뷰에선 선수로서 생명이 얼마 안 남아 하루살이처럼 피칭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없고 팀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팬들은 김진성 선수에게 환호하면서도 왜 이렇게 늘 미안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야구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일종의 존경심, 그리고 어딘가 짠한 마음이 든다.
화면 출처: 유튜브 채널 'LGTWINSTV'
11회까지 연장한 끝에 승리한 6월 1일 두산전에선 김진성 선수가 실점을 허용하며 두산이 중간에 역전했었다. 결승 홈런을 때린 김현수 선수에게 김진성 선수는 고마워 라고 했다. 경기 후 투수최동환 선수는 김진성 선수가 계속 힘들고 중요한 상황에서 올라가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야구는 이제 겨우 3분의 1을 지났다. 늘 완벽할 순 없다. 실점도 생기고 역전도 허용하고 홈런도 맞을 테다. 그래도 많은 팬들은 김진성 선수를 묵묵히 응원할 것이고 그 이유는 이미 너무나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