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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l 06. 2024

오직 야구보러 떠난 창원 여행기(2)

기차로 왕복 6시간 걸린 직관의 추억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날씨는 예보대로였다.


창문엔 이미 빗방울이 닿고 있었다. 저녁 5시 경기니까 그전에만 비가 그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여지없이 경기는 우천 취소됐다. 아무리 간절하게 비구름 레이더를 확인했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동안 쌓인 비에 경기장 상태도 좋지 않았을 테다. 진정한 야구팬은 이럴 때 선수들도 하루라도 더 쉬며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는데, 아직 초보팬이라 그런지 경기를 못 본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시즌은 길고 야구 볼 날은 많다는 위로는 초심자에겐 통하지 않나 보다.



우천취소 공지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숙소에서 나서기 전에 알게 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야구 말곤 아무 계획도 없었던 지라 온전히 하루가 비게 됐다. 나보다 계획적인 남편은 이미 옆에서 오늘 갈 곳을 찾고 있었다. 점심엔 장어구이를 먹고, 창밖이 시원하게 보이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관광지는 딱히 내키지 않았던 터라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장어구이집은 딱 봐도 유명해 보였다. 연예인들의 사인이 많이 붙어있었고 한쪽엔 이승엽 현 두산 감독의 사인 배트가 전시돼 있었다. 야구에 관심을 두기 전엔 지나쳤을 풍경이다. 식사를 마치곤 빗속을 걸어 카페로 향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였는데 꽤나 오르막이었다. 내리는 비 덕분에 나뭇잎이 더 선명해 보이고 좋았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는 넓고 쾌적했다. 아메리카노를 각자 두 잔씩 총 네 잔을 마셨고, 케이크에 빵까지 먹으며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저녁 약속을 잡았다. 남편 친구와 셋이 회를 먹기로 했다. 창원 사람인 그가 잘 아는 맛집이 있다고 했다. 다섯 시에 식당에서 만났다. 2층 규모의 식당은 매우 컸고, 음식도 맛있었다. 처음으로 창원에 와서 남편의 오랜 친구를 만나고, 함께 술 한 잔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늦은 밤 다시 빗속을 뚫고 숙소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경기가 취소됐으니 일요일엔 더블헤더가 열렸어야 했다. 하지만 기상 상황 상 두 경기 중 하나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원래 우린 일요일 낮 1시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는데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KTX를 조금 더 늦은 시간으로 다시 예매하자니 줄줄이 매진돼 밤 9시 표가 가장 빠른 거였다. 그대로 1시에 갈지, 밤 9시에 갈지 딱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게 된 거다. 하지만 만약 두 경기 다 열리지 않으면 일요일엔 하루종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서야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집엔 새벽 1시에야 도착할 텐데 출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1시 열차에 마음을 두었던 남편은 이내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고민 끝에 1시 열차를 취소했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경기를 못 보고 돌아가더라도 이왕 처음 창원에 왔으니 최대한 머물러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1차전은 취소될 것 같아 2차전 티켓만 예매했다. 3루 원정 쪽 좌석은 아주 여유롭게 남아있었다. 여러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가장 시야가 괜찮아 보이면서 덕아웃에 가까운 테이블석으로 잡았다.



일단 오후 2시로 예정된 더블헤더 1차전은 역시나 취소됐다. 2차전을 기대하며 오후 1시쯤 일찍이 창원NC파크로 향했다. 경기장 입장은 안 됐지만 NC파크 내부 스타벅스는 다행히 영업 중이었다. 안에는 이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중간중간 하늘을 살펴보며 경기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LG팬들이 꽤 많았다. 어린아이부터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3시 10분쯤 드디어 입장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이 꽤 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서 보였다.



경기는 취소되지 않았다. 이기든 지든 한 경기 더 보고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중간에 빗방울이 내리기도, 일시적으로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해 남편이 우비를 사 와 입었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끝까지 했고, 이겼다. 밤 9시까지 마산역을 늦지 않게 가야 했기에 9회 초까지만 보고 먼저 나왔지만, 그대로 더 실점하지 않았다. 만약 낮 1시 기차를 타고 떠났다면 못 느꼈을 직관의 즐거움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에선 둘 다 바로 잠들어버렸다. 내려서 집까지 또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땐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론 다 재밌었다.


언제 또 이런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머지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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