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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l 02. 2024

오직 야구보러 떠난 창원 여행기(1)

기차로 왕복 6시간 걸린 직관의 추억


"우리 창원 갈까?"


LG 경기 일정을 살펴보던 남편이 말했다. 6월 말 NC와 주말 3연전이 있다며 이틀 정도 보고 오면 어떠냐 했다. 오직 야구를 보기 위한 여행이라니 새롭고 설렜다. 달력에 표시부터 해놓고선 KTX 예매가 열리는 날(출발 1개월 전부터 가능하다) 바로 표를 샀다. 금요일 오전에 가서 금, 토 경기를 보고 일요일 낮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올 시즌 16, 17번째 직관이었다.


출발하는 당일까지 아무 계획을 짜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멀지 않고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예약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치 경기 티켓을 산 게 전부였다. 나야 평소에도 계획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여행 일정을 액셀로 짜놓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야구 직관이었으니 관광지도, 맛집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2박 3일의 소소한 일정 하나가 바쁜 6월을 버텨내는 힘이 됐다. 답답한 일이 많았는데 창원 가는 날을 생각하며 넘겨버렸다.


6월 28일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갔다.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오늘이 아직 평일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말에 근무하는데 그때마다 평일에 하루 쉴 수 있는 대휴가 생긴다. 그중 하나를 이날 썼다. 가벼운 마음으로 열차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해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언제나 여유 있게 도착하는 걸 선호하는 남편 덕에 부지런히 나왔고 점점 그 만족감을 알게 된다. 과거의 내가 혼자 여행 왔다면 출발 10분 전쯤 도착해 커피 한 잔 겨우 샀을 터다. 



여행하러 가는 길에 타는 KTX 열차는 이토록 신나는 것이었다. 직전 부서에서 2년 동안 지내며 워낙 국내 출장을 많이 간 탓에 KTX를 지금까지 족히 서른 번은 탔다. 그땐 어떻게든 콘센트 있는 자리를 잡아 노트북 펼쳐놓고 일하기 바빴다. 그 또한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지만 신경 쓸 게 많아 금세 피로해지곤 했다. 이번엔 가는 내내 아무 생각 없이 밖을 구경했다. 둘이 가정을 이뤄 여기저기 함께 다니는 이 시간이 벌써 애틋하고 값지단 생각을 했다.


3시간이 지나 마산역에 내렸다. 창원역과 창원중앙역도 있지만 창원 NC파크는 마산역에서 제일 가깝다. 사실 처음엔 무턱대고 KTX 앱에 '창원'을 검색해 창원역 왕복표를 샀다. 얼마나 단순한가. 지도앱에서 검색 한 번 해보지 않은 거다. 살면서 특히 여행 갈 때 이런 실수를 종종 해왔다. 다행히 바로잡았던 건 경티켓을 사기 좌석을 검색하려 들어간 어떤 사람의 블로그 덕분이었다. '창원역이 아니라 마산역에 내리셔야 합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열차표를 다시 제대로 샀더랬다.



국내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지만 마산역은 처음이었다. 날씨는 쨍쨍했다. 역 근처에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택시로 10분 거리 호텔로 향했다.


우리의 짐은 초소형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다. 그마저 절반은 유니폼과 응원 도구 같은 직관을 위한 준비물이었다. 사람을 둘이지만 유니폼은 네 장 모두 챙겼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호텔은 깔끔하고 좋았다. 큰 창문으로 마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이었다. 구경은 밤에 더 하는 걸로 하고, 30분 정도 휴대폰 충전만 하고 곧장 나왔다. 야구장은 택시로 다시 10분 거리였다.


야구장에선 남편 친구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원에 사는 NC 팬인데, 기념품으로 NC다이노스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귀여운 가방과 부채를 준비해 주셨다. 야구장 구경도 시켜주셨는데 내가 지금껏 가본 5개 구장 중에 가장 시설이 좋았다. 일단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 가족이 즐길 있는 놀이 시설도 많았다. 직접 공을 던져보는 게임부터 야구 배팅, 심지어 축구 놀이까지 있었다. 네 컷 사진부터 선수들이 함께 화면에 나오는 사진도 찍을 있었다. 작심하고 만들었다는 느껴졌다. 만약 주변에 살고 야구를 좋아한다면 정말 밥먹듯이 오고 싶을 같았다.


야구장 안엔 경기장이 훤히 보이는 스타벅스도 있어 셋이 커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부부는 1층 3루 내야석으로, 남편 친구는 NC를 응원하는 1루 내야석으로 각각 흩어졌다.



관중석이 경기장과 무척 가까워 선수들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생각보다 더 가까워 놀랄 정도였다. 가장 좋았던 건 내 자리를 떠나도 어디에서나 경기가 훤히 보인단 거였다. 예를 들어 1층 내야석에 있다가 잠깐 음료수를 사러 복도로 빠져나왔더라도 그 복도에서 경기장이 한눈에 보인다. 2층도 마찬가지. 심지어 화장실에선(일단 화장실도 매우 크고 깔끔했다) 실시간으로 음성 중계가 흘러나온다. 일단 구장에 입장하면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야구를 보고 들을 수 있게 설계된 거다. 전광판도 친절하다. 메인 전광판뿐만 아니라 서브, 그리고 길게 경기장을 두르는 띠 전광판도 있다. 모든 곳이 관중 친화적이다.


이날 금요일 경기엔 LG트윈스 팬들이 생각보다 꽤 있었고 응원단도 왔다. 물론 수원, 인천, 고척에 갔을 때보단 훨씬 LG 팬 규모가 작았는데 그 나름대로 재밌었다. 롯데 팬인 회사 선배가 원정 경기에 직관 가 다른 롯데팬들을 만나면 마치 고향사람 만난 기분이라 반갑다고 했는데,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다 서울 사람은 물론 아니겠지만 지역을 떠나 같은 팀을 응원하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일종의 연대감이 느껴졌다.


경기는 졌다. NC 다이노스의 선발 카일 하트는 호투했고 맷 데이비슨의 시즌 25호 홈런도 터졌다. 데이비슨 응원가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패배는 늘 아쉽지만 매일 이길 순 없으니 내일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허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6월 말은 남부지방에 장마가 예정돼 있던 터라 기상 예보엔 다음날 모든 시간에 우산 그림이 떠 있었다. 예보대로라면 경기는 불가능했다. 야구 말곤 아무 계획도 안 짜왔는데 내일 하루종일 뭐 하지 싶었다. 무엇보다 연차 쓰고 창원까지 와서 딱 한 경기만 보고 돌아가야 하나 막막했다. 걱정을 안고 일단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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