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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Jul 20. 2024

눈물 속 '큰 절' LG 켈리, 굿바이 에이스

6년의 시간, 작별의 순간


결국 그날이 왔다. LG트윈스 투수 케이시 켈리가 떠나게 됐다. 8이닝 퍼펙트게임을 했다는 글을 쓴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2024년 7월 20일 오늘이 마지막 등판이 됐다.


출처: 유튜브 Twins Nation_트윈스 네이션


오늘 선수 본인이 경기에 나서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미 방출 소식은 알려졌고, 마지막 경기의 패전 투수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잠실 팬들 앞에서 인사하겠다는 선택을 했다고 한다. 켈리다운 결정이다.


오늘은 남편 친구가 집에 놀러 오기로 한 날이라 셋이 함께 집에서 중계를 봤다. 시작부터 야수들의 활약이 심상치 않더니 오스틴, 문보경 선수가 연달아 홈런을 때렸고 3회 초에 LG가 두산을 6대 0으로 앞섰다. 오늘따라 중계 카메라가 켈리를 자주 비췄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먹구름이 드리웠고 이내 비가 쏟아졌다. 수도권 다른 두 팀은 우천 취소됐다. 잠실에선 1시간 넘는 중단 시간을 지나 결국 다시 경기장을 정돈하나 싶더니 또 폭우가 쏟아졌고 결국엔 노게임 선언됐다. 셋이 계속 일기예보를 살피고 창밖으로 서울 하늘을 쳐다보며 경기 재개를 기원했지만, 경기는 거기까지였다.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켈리는 계속 몸을 풀면서 의욕을 보였는데, 끝내 다시 서진 못했다.


출처: 유튜브 LGTWINSTV


켈리의 방출 '카더라'가 알려졌을 때부터 팬들은 그의 마지막을 걱정했다. 행여나 조촐하게 대우할까 너도나도 염려를 쏟아냈다. LG 트윈스 사상 최장수 외국인 투수였던 만큼 켈리에 대한 팬들의 지지가 그만큼 두텁다는 걸 테다.


켈리는 지금껏 굳건한 에이스였고, 다승왕을 거쳐 지난해 한국시리즈 2경기에 선발 등판해 우승을 이끌었다. 외국인이 무려 여섯 시즌, 163경기를 뛰었다. 고별식에서 그간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재생됐는데 첫 장면 속 모습이 2019년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머리가 짧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숫자를 떠나 켈리가 LG에게 남달랐던 건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켈리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팀퍼스트였고, 손쉽게 풀어낼 수 없는 수많은 헌신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내가 아이를 출산할 때도 한국에 남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던 투수가 켈리였다.


출처: 유튜브 Twins Nation_트윈스 네이션


다행히 오늘 켈리를 위한 고별식이 열린다는 안내가 나왔고, 경기가 무효됐지만 화면 속에선 많은 팬들이 우산을 쓴 채 경기장을 지키고 있었다. 켈리가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른 선수들과 부둥켜안는 모습엔 많은 사람이 울었다. 모든 선수들의 눈이 충혈됐는데, 슬픔을 넘어선 먹먹함이 느껴졌다.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라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연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켈리는 수훈 인터뷰 때마다 팬들이 뜨겁게 응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지난달 삼성전에서 8이닝 퍼펙트를 기록한 뒤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부진할 때마다 도는 교체설을 모를 리 없었을 테다. 팬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고맙다고 했다. 선수가 팬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전해질 때만 느껴지는 감동이 있는데, 켈리가 그랬다.


켈리는 오늘 고별식에서도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큰 절을 했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며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LGTWINSTV


이런 외국인 투수를 또 만날 수 있을까. 기록을 떠나 내가 야구에, LG 트윈스에 애착을 갖게 된 굵직한 이유 중 하나였던 선수. 한글로 목에 '켈리' 문신을 새긴 이 외국인 투수는 경기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한결같이 따뜻했다.


야구를 챙겨본 지 오래되지 않아 작별의 경험이 거의 없던 내겐, 켈리의 고별식이 여러모로 커다란 기억으로 남게 됐다.


출처: 유튜브 LGTWI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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