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 서론부터 들어가자면, 나는 원체 스포츠경기에 소속감을 못 느끼는 타입이었다. 물론 월드컵 같은 국가대표 경기에서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건 당연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무엇보다 스포츠에 관심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 응원을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와 경기할 때도, 우리가 졌을 때 세상 무너지듯 절망하는 친구들과 달리 큰 아쉬움을 느끼지 못한 채 차분하곤 했다.
이랬던 내 습성이 야구를 보면서 완전히 변해버렸다. 한 시즌에 144경기나 하는데 매번 몰입한다. 야구팀은 운명처럼 만나는 거란 말이 있던데 나는 결국 그게 LG였고 다른 팀을 응원하는 건 상상이 안 된다. 경기를 이기면 내내 기분이 좋고, 선수들이 다치면 그게 그렇게 안타깝다. 어떤 팀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경험을 야구 덕에 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크다. 야구를 보지 않았으면 받지 않았을 속상함이 꽤 있다.직관을 자주 가니 '패요'가 되는 날도 많은데, 그럴 땐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이 더 멀게 느껴진다.
중요한 승부에서 스윕 당한 어떤 날엔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그런 내 모습이 좀 어이없고 웃겼는데, 세 경기 연속으로 지니 각성상태가 진정이 잘 안 되면서 수면 방해로 이어졌던 것 같다. 아직 초심자라 그런가 했는데, 상대적으로 야구 오래 본 남편도 옆에서 똑같은 모습이었다. 서로 웃었다.
그러다 최근에 스트레스 없이 야구 보는 방법을 깨달았다. 다른 팀 경기를 보는 것이다. 허무개그 같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이다. 가을야구를 코앞에 둔 요즘, 잔여경기 일정상 야구 없는 날이거나 우천 취소될 때다른 팀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곤 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으니 경기가 더 잘 보인다. 3시간 내내 재밌기만 하다. 어제(13일) 한화와 롯데의 경기도 그랬다. 롯데의 '안경 에이스' 박세웅 선수의 호투, 한화 류현진 선수의 13년 만의 시즌 10승까지. 우리 팀 경기였으면 마음 졸였을 만루 상황도 이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점수를 앞서고 있는 팀도,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팀도 다 응원하며 '긴장 없는 쾌락'을 제대로 즐겼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해도 결국 도돌이표처럼 우리 팀 경기 시간에 맞춰 TV 앞으로 간다. 과정에선 스트레스 받더라도 결과는 이겼으면 좋겠다. LG가 이겨도 져도 내 삶이 달라지는 건 하나 없는데, 두 손 붙잡고 또 본다. 이 마약 같은 공놀이에 어쩌다 제대로 코가 꿰었는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놓고선 시즌이 끝나가는 게 벌써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