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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Sep 23. 2024

미친듯이 홈으로 달려와야만 하는 홈런

박해민의 그라운드홈런을 봤다


9월 22일 어제, 올해 27번째 직관을 다녀왔다. 요즘 일도 바쁘고 이래저래 약속도 있어 몸이 많이 피곤했는지 아침에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는데, 물 한 잔 벌컥벌컥 마시고 집에서 출발했다. 아파도 절대 취소할 수 없었다. LG트윈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주말 홈경기이자, 마지막 잠실더비였다.


역시나 경기는 매진이었고, 종합운동장역부터 야구장까지 모든 공간이 사람들로 터질 것만 같았다. 경기 30분 전에 야구장에 도착했는데도 앞으로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새삼 또 신기한 게 워낙 사람많은 곳을 싫어해 강남역이나 홍대입구역 같은 곳은 웬만하면 안 가려는데 야구장은 이렇게도 자주 다닌다.


무튼 다행히 입장 줄은 빠르게 줄어 여유있게 들어갈 수 있었다. 티켓팅이 워낙 어렵다보니 남편과 연석은 불가능했고, 서로 멀리 떨어진 자리로 각자 찾아갔다.


내 좌석은 1루 네이비석. 응원 지정석은 아닌데, 이날은 그런 개념이 따로 없는 듯했다. 1루의 거의 모든 관중들이 공격 때마다 일어났다. 날은 선선한데 분위기는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듯 했다. 직관을 자주 오다보니 응원 화력이 유난이 약한 날도 있는데, 이날은 정반대였다.


열기로 터져버릴 것 같았던 9월 22일 잠실야구장


1회부터 3점 홈런이 터지더니 경기 내내 리드했고, '추분 매직'이 통한 선선한 가을 날씨 덕분에 50배 정도 더 신났다.


그리고 박해민의 데뷔 첫 '그라운드 홈런'을 봤다는 의미가 컸다.


인사이드 더 파크(inside the park) 홈런이라고도 하는 이 홈런은 타구가 펜스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타자가 1루, 2루, 3루까지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경우를 말한다. 찾아보니 KBO 용어는 장내홈런, 일본에선 러닝(running) 홈런이라고 한단다.


보통 홈런을 때린 타자는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차분히 베이스를 하나씩 밟고, 그 모습을 중계카메라가 천천히 따라가며 비추지만 그라운드홈런은 얘기가 다르다. 긴박 그 자체다. 상대 팀 야수들이 공을 처리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공이 홈으로 날아오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홈으로 뛰어들어와야만 한다. 일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올 시즌 KBO 리그에는 5번, KBO 역대론 99번밖에 없다.


어제 앉았던 네이비석 304블록은 1루수와 우익수 사이 위치라 공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타석에 나온 박해민이 공을 친 순간부터 공이 빠지는 모습, 빠진 공을 보고는 갑자기 속도를 올려 홈에 미친 듯이 달려오는 그 15초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봤다. 홈에 슬라이딩하며 주먹을 불끈 쥘 땐 야구장이 함성 소리 탓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고, 3점도 2점도 아닌 그 1점에 모든 사람이 방방 뛰며 환호하는 풍경은 직관으로만 눈에 담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팬들의 도파민이 끓어 넘치다 못해 여기저기서 터져버리는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부진했던 박해민 선수가 공수에서 날아다닌 경기라, 응원하는 팬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2년 차 초보자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경기를 보며 일종의 학습을 하게 되는데, 이 학습 효과는 직관에선 배가 된다. 현장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장면이 통째로 머리에 박혀버리는 식이다. 한동안 내게 그라운드홈런은 곧 박해민이고, 배경은 2024년 9월 잠실일 수밖에 없다.


LG의 정규 시즌은 이제 네 경기 남았다. 야구 실컷 봤던 올 한 해도 곧 4분기에 접어든다. 언제 또 이렇게 열심히 직관을 다닐 수 있으려나. 그리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오늘 출근길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가을은 설레고 세월은 아쉽다.


화면출처: 유튜브 LGTWI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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