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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Sep 28. 2024

시즌이 저무는 야구장에선


며칠 전 인천 SSG 랜더스필드로 혼자 직관을 다녀왔다. LG트윈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였다. 당일에 운 좋게 응원석을 취소표로 예매했다. 자리가 경기장과 생각보다 더 가깝고 탁 트여 좋았다. 실물 티켓을 보관하고 싶어 기계 앞에 줄을 섰지만, 평일인데도 줄이 너무 길어 큰 고민 없이 포기하고 경기장에 일찍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가을은 가을인지 하늘은 높았고, 저녁엔 분홍빛으로 물들더니 딱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길고 긴 여름에 땀범벅인 채로 직관을 다녔는데 온몸이 뽀송하니 상쾌했다. 이날 LG의 선발은 전원 안타를 때렸고 이날 승리로 3위 진출을 확정했다. 선발투수 임찬규 선수의 10승, 박동원 선수의 20 홈런, 그리고 김성진 선수의 데뷔 첫 홈런까지 기쁘게 보고 왔다. 인천에서 집까지 갈 길이 멀지만, 수훈 인터뷰까지 다 보고 나왔다. 


어쩌면 시즌 마지막 직관이 될 것도 같았다.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가을에도 야구를 볼 수 있게 됐지만, 일정상 직관이 쉽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표 구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들었다. 물론 시간이 맞는 날엔 예매를 시도는 해보겠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이래저래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번 직관에선 여러 생각을 했다.


2024년은 말 그대로 야구로 시작해 야구로 끝나가고 있다. 아직 바람이 찼던 3월엔 남편과 유광점퍼를 챙겨 입고 야구장에 드문드문 피어있는 벚꽃을 보며 초봄을 느꼈고, 봄이 제대로 왔을 땐 날씨에 취해 신나게 직관을 다녔다. 그냥 서 있기도 힘든 한여름에도 꿋꿋하게 야구장엘 다니다 제대로 더위를 먹기도 했고, 조금 선선해진 최근 며칠은 불어오는 바람에 둥실둥실 또 야구를 보러 갔다.


이날까지 올해 스물여덟의 직관 중 잠실야구장이 단연 가장 많았지만 그 외에도 인천, 고척, 수원, 그리고 대전, 창원까지 가봤다. 지하철에서, KTX에서, 야구장에서, 근처 술집에서 남편과 찍었던 사진들이 벌써 수십 장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추억을 쌓았다. 어린 조카도 데려가봤고(도착하자마자 우천취소로 먼 길을 되돌아와야 했지만), 야구를 전혀 모르는 친구와 응원석에서 목이 쉬도록 놀다 오기도 했다. 회사 친한 선배, 동기와도 퇴근하고 함께 야구를 보러 갔고, 처음으로 가본 창원에선 남편의 오랜 친구와 함께 즐기기도 했다.


여러 상황 상 내년에도 이렇게 실컷 야구장에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 올해의 기억이 특별하게 남을 듯하다.


2024년 KBO 정규시즌은 10월 1일 종료된다. 오늘 기준으로 사흘 남았다. 시즌이 저무는 야구장엔 설렘과 아쉬움이 뒤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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