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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원 Oct 06. 2024

포스트시즌 직관은 처음이라

가을야구는 이런 거였어


LG와 KT의 준플레이오프 경기를 보고 왔다. 포스트시즌 직관은 처음이다.


멍하니 계속 보게 되는 요즘 하늘.


요즘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다. 날씨 덕이다. 나는 반대의 의미로 가을을 타는 사람인 듯하다. 출근길도 썩 괴롭지 않고 퇴근길은 두 배로 기쁘다. 코 끝에 서늘한 바람이 스칠 때 마음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개운하다. 역시 여름보단 겨울이고 겨울보단 가을이다. 여름야구보단 가을야구다.


별 거 안 해도 기분이 괜찮은 날씨에 가는 야구장은 가히 최고의 공간이다. 폭염에 그 고생을 하며 꾸역꾸역 직관을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그랬나 싶다. 땀이 쏟아지며 옷이 몸에 들러붙어 순식간에 온몸이 축 늘어지던 그때와 달리 이젠 불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22도 안팎의 선선한 날씨는 인간의 기분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게 분명하다.


준플레이오프 티켓팅은 쉽지 않았다. 예매날인 금요일엔 할머니댁에 방문했었는데, 할머니 침대 위에서 할머니 옆에 엎드려 티켓팅을 했다. 엄마 휴대폰으로 인터파크 서버시간도 틀어놨다. 엄청나게 치열하다는 악명을 익히 들어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분명 예매 버튼이 활성화되자마자 누른 것 같은데 대기가 수만 번대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한 장을 건졌다. 팁이랄 건 없었다. '자동배정 가능한 좌석이 없습니다' 이런 문구가 계속 나왔지만 무시하고 냅다 자동배정을 돌렸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결제 창으로 넘어갔다.


할머니 방 노란 이불.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해주세요.


포스트시즌은 날마다 기념품을 나눠주는 듯했다. LG트윈스는 포스트시즌 한정 노란 수건을 나눠줬는데 받지 못했다. 그걸 받으려면 경기 3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했다. 트윈스샵에서 항상 파는 8천 원짜리 수건을 사들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원래 있던 수건을 최근 쥐도 새도 모르게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정규시즌에도 몇 번의 매진 경기가 있었지만 포스트시즌은 확실히 달랐다. 초반부터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모든 구역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경기장 곳곳이 포스트시즌 마크로 꾸며졌고 무엇보다 응원 깃발이 정말 많았다. 시즌 중에 하는 춤신춤왕 같은 팬 이벤트는 없고 응원도 양 팀 모두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다른 점이었다. LG도 KT도 응원 화력이 대단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KT 응원가도 좋은 게 많아서 귀에 금세 익었는데, 특히 어딘가 좀 서정적이고 아련한 멜로디가 많아 인상 깊었다.


이번 주에 이어지는 준플레이오프 남은 경기는 직관을 가지 못한다. 표도 없고, 있어도 일정상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 다녀온 게 더 다행이고 기쁘다. 이렇게 올해 직관을 서른 번 채웠다.


저 위에서 깃발 흔드는 럭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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