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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an 12. 2022

혼자 울고 있는 남자


 혼자 울고 있는 남자     

 우연히 자동차 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정말 우연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나 보다. 두고 온 소지품이 생각 나 주차장으로 내려갔던 중이다. 처음엔 그저 엎드려 있는 것이려니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른 발걸음을 죽이고 계단을 다시 올라오는 것이 도리였다.

 그는 왜 혼자 울고 있었을까. 늦은 시간에, 하필이면 어두운 차 안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몸을 감추고 슬프게 울어야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눈물이라는 것이 보는 이나 흘리는 이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묘한 물질이기는 하다. 그래서다. 보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 그러고 보면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 수 있는 장소가 차 안밖에는 없는 것 같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때때로 공간은 너무나 절실하여 소원일 때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나 보다. 녹음이 우거지는 7월이었는데 방과 후 친구 집엘 가게 되었다. 형제가 많았던 친구라서 어린 나이에도 앉을자리가 없다는 것이 민망스러웠다. 그런데 친구가 손을 끌더니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로 가자고 말을 했다. 주변에는 대학교가 가까이 있어서 교정이 산의 일부처럼 보이던 곳이다. 따라 올라간 곳은 학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데다 넓은 돌들이 다문다문 박혀 있는 것이 제법 마음에는 들었다.

 그곳까지 올라간 친구는 쪼그리고 앉아 “참 좋지?”라고 한마디 하더니 한참 동안 내려다보기만을 했다. 그때 나는 얼굴이 통통했던 그녀가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대로 친구네 간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먹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마음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얘가 여기 와서 울기도 하겠지?’ 나도 혼자 그럴 때가 있었으니 무엇보다 그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속상하고 우울하면 생각나는 옛 친구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가장 적절한 위로를 주는 벗이기도 하다. 친구와 나는 스무 살 무렵 거의 한 집에서 같이 살다시피 했다. 스무 살이 무엇이던가. 나에게만 있는 듯 온갖 고뇌와 갈등들이 투명하지 못한 미래에 두려움을 주었을 때가 아니던가. 어쩐지 암울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 겁부터 나던 때가 아니었나. 그렇다고 무엇이든 못할 것도, 안 될 것도 없던 시절이었건만. 왠지 혼자 있길 간절히 원하던 때였다. 

 그런 우리에게 다락방이 있었다. 창고 역할 외에 별 쓰일 데가 없던 다락이었지만 둘에게는 최고의 은신처였고 안식처였던 셈이다. 각자 그대들의 방에 초대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 흥분은 말할 수 없었다. 다락방은 너무 좋았다. 문을 잠그고 얕은 계단을 몇 개 올라가 배를 깔고 누우면 좋을 만큼 천장이 낮았지만 참으로 아늑했다. 마치 내 원초적 공간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다. 아주 많이 어두워지면 30촉짜리 알전구를 켜기도 했지만 늦도록 이유 없이 억울한 박탈감에 혼자 울어야 할 때가 있었다.

 다락만으로 우린 종종 부족했다. 여름이면 한낮 동안 햇볕에 달은 옥상으로 올라가 저녁 무렵부터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곤 했다. 어느 특별한 날에 친구는 감동적인 자작시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나왔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모작 같은 시들을 창작인 냥 나누어 읽으며 유치하리만큼 들떠 감동을 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이리하여 잡문에 불과한 것들에게 희망을 가지면서 어둡기도 했지만 화려하기도 했던 이십 대를 우리는 시작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봄날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시절이었고 순결한 때가 아니었을까. 첫사랑의 시련도 희망도 절망도 꿈이 있어 아팠던, 이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시절이다. 속절없던 그때가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면 괴롭기도 했지만 그립기만 한 시절이다. 슬픔이 힘이 되어 어른이 되게 했던 산실 같은 다락방이 또한 없었다면 그 시절은 있었을까. 서로의 자리가 되어 주었던 그녀들이 없었다면 다락방은 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금 내가 사는 곳 지하에는 창고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 언젠가 가족들에게 그곳을 개조해 내 방으로 쓰겠다며 떼를 쓴 적이 있다. 밤늦게까지 혼자 실컷 있으면서 웬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식구들은 시큰둥했다. 겁이 많은 내게 고양이가 때때로 출몰해서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알기나 하느냐고도 했다. 들은 척도 안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가소로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주택법상 방으로 개조해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기는 하다. 음산하여 무서운 곳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깨끗하고 예쁘게 다듬어 그곳에서 하룻밤도 자고 음악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초대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마음껏 소리 칠 수 있는 내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내 소망을 딱하게 생각한 지인은 구원을 해주듯 오피스텔 열쇠를 빌려줄 테니 원할 때 사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단지 나는 나만의 내 열쇠가 있는 철통 같은 요새를 가지고 싶어서 일뿐이라는 걸 그들은 모른다. 

 자질구레하면서도 슬프거나 아무것도 아닌 하루들이 때로는 나를 인내할 수 없는 고독으로 떨어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혼자 있을 다락이 필요했고 옥상이 필요했고 구석진 자리가 필요했다. 이제 자동차 안밖에 없는 것일까. 오늘, 점점 더 고독해지고 내가 더 많이 외로워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공간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 울던 그 남자에 대한 연민이 여러 날 동안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이 그를 그곳에서 울게 했을까. 마음 한구석 빈자리라도 빌려주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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