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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Dec 15. 2021

우산을 들고 마중나가던 날이 그립습니다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던 날이 그립습니다    

 모처럼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빗줄기가 차창을 긋는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릴 터이다. 그러니 당장은 그치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차창 밖 내리는 비에 흠뻑 만족해도 좋을 듯하다.

 갑자기 내린 비로 정류장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우왕좌왕 모여 있는 모습들이다. 다소 초조해 보인다. 간혹 이리 될지 어찌 알았는지 손에서 우산을 펴는 이도 있다. 조금이라도 비를 피하기 위해 뛰어 가든지 혹은 오는 비에 어쩌지 못하고 가판대에 놓인 우산을 집는 이가 보이기는 할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 그냥 조금 기다리면 될 것 같아서 인지 고개를 빼고 미어켓처럼 두리번거리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어쩌면 우산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 들고나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가?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시간은 있으니 조급증을 내기는 이르다. 얼마 후의 상황은 생각 말자. 비는 바라만 봐도 마냥 좋지 않던가. 이 무심함에서 가방 안에 우산이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기분은 점점 상쾌해진다. 아니면 조금 맞지, 하는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바라보는 것에 여유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누군가 마중 나가는 일을 좋아한다. 아니 원한다. 집을 나설 때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경우 우산을 챙겨 주기도 하지만 내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갑자기 오는 비에 맞춰 우산을 들고 나가 서 있으면 화들짝 반가움에 놀라워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참 좋아서이다. 함께 두런두런 우산을 부딪치며 이야기하고 오는 것도 좋다. 그래서 어느 때 마중 나가는 것을 놓치기라도 하면 비 맞은 것이 내 탓이라도 한 것인 마냥 미안하다. 하지만 잠깐 들뜬 기분에 두근대며 누릴 수있는 호기를 놓친 것에 실은 못내 더 아쉬운 마음이다. 

 비오는 날 종종,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기억 하나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 작은아이에게 미안했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까. 때마침 비 오는 것을 미처 몰랐던 터라 부리나케 빗물을 튀겨가며 교문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저만치 아이가 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비 맞은 생쥐 꼴’이다.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크게 이름을 부르며 뛰고 있는데 이 녀석이 그만 획 뒤돌아 다시 학교 쪽으로 가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제 딴에는 기다리다 지쳐 이것 보란 듯이 비를 맞고 오던 중이었나 보다. 아이가 얼마나 기다렸을까. 비는 하염없이 오고 친구들 엄마들은 하나 둘 도착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우리 엄마 얼굴은 보이지 않지. 여덟 살 녀석은 무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엄마를 보자마자 골이 한층 나 엄마 마음을 괴롭히고 싶었겠지. 

 뛰어가 팔목을 잡고 보니 울고 있었다. 우산을 쥐어주자 바닥에 던져 버리며 쓰지 않겠다고 우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고 사랑스럽던지 깔깔대고 웃었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흥’ 한다. 결국 아이를 업고 집에까지 오고서야 달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나 엄마에게나 행복했던 기억이다.

 이제 예전만큼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갈 일은 그다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조금씩 승용차 이용이 생활화 되어 현관까지 비를 맞지 않고 들어 올 수 있으니 굳이 우산이 필요 없게 된 까닭이다. 혹은 정류장 가판대라든가 밖의 날씨를 알 수 없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깜짝 놀라게 우산을 판매하기도 하니 ‘우산 들고 나갈 게’, 하는 제안이 먹히지도 않는다. 

 비가 오는 날 누군가 나를 위해 마중 나왔던 때가 있었나를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위해 우산을 들고 나갔을 때가 그보다 많다는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마중 나올 이가 없는 시간에 외출했다 귀가를 하니 꼼짝없이 비를 맞든지 나도 저들처럼 비를 피해 그치기를 기다리든지 했을 것이다. 간혹 어찌할 수 없는 큰비에는 후다닥 우산을 사기도 했겠지만 오는 비가 싫지 않았을 나로서는 그다지 귀찮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비는 그칠 생각 없이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슬슬 ‘이제 내려서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할까 보다.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늦은 저녁 우산을 챙길 일이 있을지 알겠는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돌아올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산을 쓰고 비를 튕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어찌 했든 그럴 때가 언제였는지 우산을 들고 누군가를 마중 나가던 그때가 그립기만 하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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