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희 Dec 12. 2021

다, 당신 덕분입니다

   다, 당신 덕분입니다


  겨울 초입에 얼마만의 홍대 앞 나들이인지. 지금 사는 곳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자주 들리던 거리이기도 하다. 강남보다는 이곳이 가까웠고 어쩌다 들려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이 거리가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계절 동서남북, 싱싱하게 푸드덕거리는 젊음의 거리와는 아주 먼 듯한 외형과 나이임에도 공연장이 있고 영화관이 있고 야시장이 있고 조금만 올라가면 헌책방이며, 무엇보다 화방이 즐비해 구경하기는 이만한 데가 없어서다. 가까운 친구와 즐겨 약속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홍대 길은 대단한 두근거림을 가지고 나섰다. 한 번 걸음 하기 먼 거리인 탓에 책임져야 할 일을 서둘러 준비하는데 그만, 그마저 설레어했다. 책임져야 할 일이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입력 봉사인데 도서관에서 필요한 서적을 가져와서, 점자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과정을 문서로 작성해 전송을 한 후 책을 반납하고 다시 입력을 위한 도서를 가져오는 일이다. 물론 시간제한이 없는 까닭에 이번 홍대 나들이는 결코 이 일이 우선은 아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브런치를 위함이었으니.

 그동안 어렵다는 브런치 작가에 진입을 했음에도 한 편의 글도 올릴 수 없었다. 이미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알음알음 소문은 났는데 글은 없고, 슬슬 불안하면서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도와주겠다는 아이들은 제 일들이 바빠 쉽게 곁으로 오기 힘들었고 아무리 검색을 해도, 설명을 들어도 부족한 식견으로는 해결이 어려웠다. 

  초조한 나머지 즐겨 찾던 브런치 작가와 연락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하고 염원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예전 함께 활동하던 분이 이미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 아닌가.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수년 만에 만남을 홍대에서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변함없는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는 이미 온라인 활동으로는 가히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 미미하고 어쩌면 단순한 워드 작업에만 충실했던 것으로 보면 부끄러울 만도 했지만 무겁게 들고 간 투박한 노트북과 함께 뻔뻔해져도 좋았다. 

 그런데 그처럼 온라인에 능한 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다 보면 그 자리, 다시 그 자리, 다시 반복해 그 자리. 당황하던 차에 옆자리 학생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안을 주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사실 두 사람은 찻집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만한 연배는 이미 아니다. 가끔 찻집에 들렸을 때 젊은이들이 자그마한 노트북과 하나가 된 모습을 흠모해 마지않을 적도 있었지만 나와는 무관하여 그 모습을 한 번도 상상도 꿈꿔 본 적도 없다. 그저 젊음이, 저 학구열이 부러웠던 것은 분명했다.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니 학생은 의외로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본인 하던 작업을 멈추고 이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학생 역시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 안타까웠다. 브런치를 경험한 적 없는 그녀로선 의외일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나를 위해 어렵게 온 그의 도움도 부질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무언가 내 쪽의 차고가 있을 터인데 모두 찾을 수가 없다, 

  한 시간을 넘게 학생은 아예 자리를 옮겨 여기저기 클릭으로 찾아다니며 알아보기까지 하다 결국엔 다시 작가 신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일러 주기에 이르렀다. 다시? 그 어렵다는 것을? 그러다 안되면? 혼자 속으로 이러고 있는데 학생이 아무래도 아이디가 두 개인 것이 문제인 것 같다고 한다. 

 두 개인 이유는 몇 해 전에 DAUM으로 들어가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한 것이 있었고 최근 카카오 계정으로 들어가 작가 신청을 한 것이 있어 그것을 말하는 듯했다. 결국 학생은 두 개를 통합해 하나의 아이디를 만들어 주고 작가 서랍에 있는 글 하나를 발행까지 해주는 수고와 친절을 베풀어 나를 고마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그런 학생을 보면서 살아오며 내게도 저런 적이 있었나, 낯선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다해 도움을 베푼 적이 있었나 돌아보게 된다. 중간중간 본인이 하던 작업을 들여다봐야 하니 귀찮을 만도 하고 제대로 해결이 안 되니 손을 놓을 만도 한데 노년의 두 사람을 끝까지 챙겨 준 것에 어여쁜 학생의 미래를 본 듯하여 따뜻했다. 여리고 가냘픈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하는 모습에서 어려울 때 의지하게 된 이에게 느끼는 평화로움까지 더했다. 

 해결된 후 우리 두 사람은 그제 서야 말했다. 아무리 둘이 머리를 조아려 탐색을 했어도 아마 영원히 해결 못 할 일이었다고. 그리고 웃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다, 그러니 전부 다 학생 덕분이라고. 

 이래저래 고마운 두 사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도 한턱 낼 일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