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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Dec 26. 2021

 나 여기 있어요


          그대어디 있나요

         (나 여기 있어요)     

 지금을 익명의 시대라고 한다. 익명은 인터넷을 통해 본명을 감춘 대신 아이디를 사용하면서 부상된 말이다. 마치 짙게 코팅된 유리창 안에 자기를 숨긴 것처럼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 자유를 누리는 행위도 그중 하나다. 간섭받기도 간섭하기도 싫어하는 이들이 새롭게 만든 시류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  누가 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현실이 문득 모두를 낯설게 한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서 어쩌지 못할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한편 그들 자신부터 간섭에서 자유로워 세상에 무심해서이기도 하지만 불편하지 않아 알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일 게다. 그러니 그들은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 어려움 없이 그렇게들 잘 살고 있는 중이다. 혹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처럼 제발 좀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도 가끔 ‘나, 여기 있어요’. 여기 좀 봐 달라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연락을 몇 번 했는데 반응이 좀체 없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연락을 해 올 때 마음이 옛날 같지는 않다. 그때는 이미 궁금함도 관심에서 벗어나 잊고 있을 때인데 너는 뭐하냐며 알은척해 오는 경우 반갑기도 하지만 다소 생경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 너무 오랫동안 무심하다가는 잊힐 것이 염려스러웠던지, 그렇지 않으면 꼼짝없는 이곳이 궁금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다시 연락을 주기 기다리는 것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통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칩거하고는 다르게 그런 의미에서 ‘잠수를 탄다’는 신종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용어가 아니다. 물속에 가라앉았다 제가 뜨고 싶을 때 떠오를 테니 찾지 말아 달라는 의미일 게다. 아니면 고이 잠겨는 있으나 나 여기 있으니 알고 있으라는 함구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사실 아무도 그의 잠수에 아쉽게도 관심이 없다. 잠깐 궁금하다 그리고 말 뿐이다. 

 고정적인 외출 이외엔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종일 있어도 유선 전화는 물론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고 사용하지 않는 날도 많다. 묘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 평화롭다. 어느 때는 며칠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기도 하는데 물론 게으르기도 하고 나태해서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철저히 혼자 있고 싶을 때 빈집인 척할 때도 있으니 비슷함을 즐기는 이들 중 비록 나만의 짓은 아닐 듯하다.

 코쿤족이라고 있다. 코쿤이란 누에코치를 뜻하는데 돌돌 말아 자기만의 세계에 자신을 감추고 그 안에 빠져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교류할 시간도 없고, 상대와의 이견 조율이 귀찮기도 하고, 부족한 경제력 탓이기도 할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공간과 혼자서 행동하고 노는 것을 즐기다 보면 코쿤족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는 코쿤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울러 익명의 시대를 비난할 수도 없겠다.

 혼자 있기 좋은 장소로 아무래도 차 안이 적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큰돈을 투자하며 빈축을 사면서까지 차내를 치장하고 혼자 운행을 즐기는 이를 볼 때가 있다. 마땅치 않아 눈살을 찌푸리곤 하지만 지나치고 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다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간혹 요란하지는 않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나만의 음악을 혼자 듣다 보면 그곳이 좋아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 굳이 눈 흘길 일은 아니다. 

 ‘셜리 밸런타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가족 모두가 엄마인, 그리고 아내인 셜리의 존재를 건성으로 생각한다. 종일 가족의 무신경 속에 살다 보니 어느 날 셜리는 정말 자신이 벽하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벽아, 나는 오늘 말이야…. 그런데 벽아, ……” 하는 말투다. 코믹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왠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사족이지만 엔딩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 없다.)

 아무리 홀로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다 나도 셜리 같은 짓을 한다. 설거지를 하다, 청소기를 밀다, 중얼중얼하는 것이 꼭 그 모양이다. 각자 저들 방에 들어가 내가 있는지 없는지 말 한번 붙이지 않을 때도 있다. ‘나 여기 있다’고 말이라도 걸라치면 시큰둥하게 제발 건드리지 말라는 듯 귀찮아하는 것을 읽는다. 그럴 경우 쓸쓸하니 돌아서다 나를 반성해 본다. 저들도 좀 봐 달라 나를 찾았을 때 나도 혹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아마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 내가 먼저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그대,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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